바스키아의 예술적 비전을 담은 실험적 밴드, Gray

d

장 미셸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는 현대 예술사에서 독창성과 다학제적 접근을 상징하는 예술가로, 뉴욕 브루클린에서 아이티계 아버지와 푸에르토리코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다양한 문화적 배경 속에서 성장했다.

1970년대 후반, 뉴욕 그래피티 씬에서 ‘SAMO’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독창적 메시지로 주목받은 그는, 이후 신표현주의 운동의 중심에 서며 앤디 워홀과 같은 전설적인 예술가들과 협업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고, 독특한 상징성과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으로 예술계에서 오늘날까지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Marina Djabbarzade

이처럼 바스키아의 상직적인 업적 중 간과되기 쉬운 것 중 하나는 그가 시각 예술뿐 아니라 음악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는 점이다. 1970년대 말 뉴욕은 예술과 음악 모두에서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시기를 맞이하고 있었고, 바스키아의 음악 활동도 이 시기에 꽃피웠다.

밴드의 출발점은 1979년 4월 29일 열린 ‘Canal Zone Party’에서 비롯되었다. 이 행사에는 페이머스 파이브(Fabulous Five) 그래피티 팀을 포함한 여러 예술가들이 참여했으며, 당시 SAMO라는 가명을 사용하던 바스키아도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며 주최자인 마이클 홀먼(Michael Holman)에게 밴드 결성을 제안했다.

밴드 초기에 테스트 패턴(Test Pattern), 배드 풀스(Bad Fools), 채널 9(Channel 9) 등 여러 이름을 사용했지만, 바스키아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선물한 의학서적인 그레이 아나토미(Gray’s Anatomy)에서 영감을 받아 밴드 이름을 그레이(Gray)로 정했다.

ⓒMarina Djabbarzade

초기 멤버는 바스키아, 홀먼, 바스키아의 친구 섀넌 도슨(Shannon Dawson), 그리고 웨인 클리포드(Wayne Clifford)로 구성되었다. 바스키아는 클라리넷, 기타, 신디사이저를 연주했고, 홀먼은 드럼, 클리포드는 키보드를 맡았으며 도슨은 트럼펫을 연주했으나 음악적 방향성 차이로 기타리스트 닉 테일러(Nick Taylor)로 교체되었다. 이후 클리포드가 배우 빈센트 갤로(Vincent Gallo)를 소개하며 밴드가 완성되었다.

Drum Mode - Gray / ⓒYouTube

그레이는 인더스트리얼 사운드, 재즈, 노이즈 등 다양한 음악적 요소를 결합하며 당시의 음악적 틀을 허물었다. 클라리넷, 기타, 신디사이저 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사물까지 악기로 활용하는 실험적 스타일로 주목받았으며, 뉴욕의 전설적인 공연장인 ‘CBGB’와 머드 클럽(The Mudd Club)에서 활동하며 노 웨이브(No Wave) 운동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1979년부터 1981년이라는 매우 짧은 기간 동안 활동한 그레이는 독창적인 사운드로 언더그라운드 씬에서 주목받았지만 당시 활동 기간 동안 음반을 발매하지 않았다. 당시 밴드가 남긴 사운드트랙은 바스키아가 주연을 맡은 영화 ‘Downtown 81’의 사운드트랙인 ‘Drum Mode’ 등의 몇 곡이 전부였다.

Shades Of... Full Album / ⓒYouTube

1981년, 바스키아가 신표현주의 미술에 집중하기 위해 밴드를 떠나면서 멤버들은 각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홀먼은 영화 제작, 닉 테일러는 DJ 활동에 전념했고, 빈센트 갤로는 배우로써 영화계에서 활약했다.

그리고 2010년, 약 30년이 흐른 후에 홀먼과 테일러는 그레이의 재결합을 알리며 재결합 앨범이자 데뷔 앨범인 ‘Shades Of...’를 발매하며 밴드의 유산을 이어갔다. 대부분의 곡은 90년대와 2000년대에 녹음되었지만, 1981년 곡 ‘Drum Mode’가 포함되어 있고, 바스키아의 샘플도 일부 재작업되어 앨범에 포함되어 있다. 이 앨범은 노 웨이브의 정신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작업으로, 여러 비평가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 후 2022년, 몬트리올 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Seeing Loud: Basquiat and Music’은 그의 삶과 작품에서 음악이 차지한 중심적 역할을 조명했다. 그레이의 실험적 사운드는 단순히 음악을 넘어 바스키아의 시각 예술에도 깊은 영향을 주었고 그의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리듬감과 즉흥적인 표현은 그가 음악 활동에서 얻은 영향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가 밴드 활동에서 추구한 창의적 실험은 그의 회화에서도 이어져 독특한 상징성과 다층적인 표현을 형성했다.

ⓒMarina Djabbarzade

바스키아는 단순한 화가를 넘어 다층적이고 혁신적인 예술 아이콘이다. 그의 삶을 돌아보면 그가 단순히 예술을 만드는 사람을 넘어, 자신이 속한 세계를 끊임없이 탐구하고 확장하려 했던 존재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창작이란 단순히 작품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삶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고, 자신만의 언어로 세계와 소통하는 과정임을 보여주었다.

그레이의 음악 역시 단순히 소리를 내는 행위가 아니라, 실험적 사운드를 통해 ‘틀을 깨는 새로운 방식’과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웠다. 바스키아는 이 모든 것을 자신의 작품과 행동으로 증명해냈으며, 이는 우리가 각자의 방식으로 창조성을 발현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것과 동시에 우리가 예술과 삶의 경계를 넘나들며 계속해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Editor / 노세민(@vactionwithp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