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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조금 거리가 있는 천안 골목에 미국 프랜차이즈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집과 바이닐바가 함께 자리 잡고 있다. 두 곳 모두 과거의 문화와 음악이 녹아들어 서울의 여느 숍들 못지않은 개성 가득한 공간이다. 소울트레인과 크라브바이닐바를 운영하는 디스코나니는 천안뿐 아니라 서울 각지를 돌아다니며 DJ 활동도 겸하고 있다. 디스코를 시작으로 올드스쿨과 블루스, 라틴, 볼레로, 보사노바와 시티팝, 국내외 가요 등 어떤 장르에 규정짓지 않고 선곡하며 본인의 음악적인 세계관까지 다양한 이들에게 전하고 있다. ‘음악’과 함께 살아가는 디스코 나니의 그간의 여정을 물었다.
Q. 디스코 나니, 본인에 대해서 소개 부탁한다.
A. 안녕하세요. 천안 신부동에서 소울트레인, 크라브바이닐바를 운영 중인 예수민 입니다. 하우스뮤직 커뮤니티 선데이하우스에서 디제이 활동도 겸하고 있습니다.
Q. 소울 트레인과 크라브바이닐바를 운영 중이다. 각기 다른 공간에 대한 소개 부탁한다.
A. 소울 트레인은 지금도 홍대에서 영업을 하고 있는 ‘치킨인더키친’이라는 브랜드를 시작으로 파생됐어요. 제 자체 브랜드는 아니었고 오랫동안 직원으로 있었고 천안으로 내려와서 4년 정도는 치킨더키친으로 운영했어요. 이후 소울트레인으로 상호를 변경해 5년째 소울트레인이라는 이름의 치킨집을 운영하고 있어요.
‘소울트레인’은 미국 대중음악사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 프로그램이기도 하고 최초로 이제 흑인들로만 구성된 음악 프로그램에서 영감을 받아 70년대 미국 프랜차이즈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집을 모티브로 한 공간 운영 중에 있어요.
크라브바이닐바는 소울트레인 바로 밑에 위치한 바이닐바에요. 과거에 운영했던 경성 재즈크라브라는 숍의 후속 버전 같은 느낌이에요. LP 음악이 생소한 젊은 층을 타겟으로 저렴한 위스키 가격을 만나볼 수 있는 장점이 있어요. 가격 면 외에도 음향 장비에도 신경을 써서 좋은 음식과 주류와 함께 페어링할 수 있는 좋은 음악이 메리트인 바입니다.(웃음)
Q. 천안 골목 상권 부흥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굳이 천안에 자리를 잡은 이유가 있을까.
A. 천안 신부동은 제가 아주 어릴 적부터 추억이 쌓인 곳, 그리고 새로운 도심들이 생기면서 과거만큼의 호황은 기대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우리 골목에 진입한 첫 20대 사장으로 자부심을 가지고 운영 중입니다. 이제 저보다 오래된 사장님이 이 동네에서는 손에 꼽을 정도니, 세월이 무상하게 느껴질 정도네요.(웃음)
Q. 소울 트레인, 크라브바이닐바 이외에도 경성재즈크라브, 버드랜드 등 다양한 공간을 소개하고 운영했다.
A. 경성재즈크라브, 라디오쌀롱 모두 신부동에서 인기 있던 식당이었고 이를 토대로 해방촌에 유명 재즈클럽 상호를 본떠 만든 ‘버드랜드’를 론칭했어요. 버드랜드는 과거 마이스 데이비스, 찰리 파커 등 유수의 뮤지션들의 모든 공연을 그곳에서 했을 정도로 유서 깊은 뉴욕의 재즈클럽이에요.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찰리 파커의 별명인 ‘버드’와 연관을 지어 해방촌에서 음식점을 개업한다면 음악적인 것들과 연계를 지어야겠다고 생각해서 탄생한 곳이었어요.
아쉽게도 모두 코로나로 인해 폐업을 하게되었어요. 가슴 아픈 일이지만 그 기간 동안 많은 배움이 있었고 향후에는 이 세가게 모두를 합친 식당을 론칭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어요.(웃음)
Q. 더 과거로 내려가자면 댄서로 활동을 시작해 명월관의 디제이 등 다양한 일을 해왔다. 지금의 사업체를 꾸리기까지 과거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A. 제 첫 커리어는 백댄서였어요.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많이 듣고 자랐어요. 부모님이 장남감은 안사 줘도 컴필레이션 팝 앨범을 사다 주고 할 정도로요. 음악을 자주 듣다 보니 자연스럽게 마이클 잭슨의 춤을 좋아했어요. 저는 당시 비(정지훈)를 좋아했고요.
춤을 잘 추고 싶은 마음에 아르바이트와 게임방 대회 상금으로 댄스 연습실 개인 레슨을 받았어요. 그렇게 쭉 춤을 추다가 논현동에 있는 팀에 들어가게 돼 김장훈, 제이워크 등 당시 여러 가수의 백댄서를 전담하며 서울살이를 시작했어요.
춤을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클럽에 다닐 일이 많아졌는데 거기서 제 DJ 스승님을 만나게 됐어요. 당시 대학에 들어가면서 댄스팀에 들어가다 보니 시작이 많이 늦은 편이어서 조금 더 끌리는 쪽을 선택했어요. 그렇게 24살 때부터 클럽 일부터 기획 마케팅, DJ 일을 해왔어요.
지금은 사라졌지만, 홍대의 명월관이라는 클럽과 흐지부지, 에반스 등 홍대의 여러 베뉴에서 오랫동안 음악을 틀기도 했어요. 공연도 잦은 곳이었다 보니 하우스 음악만 음악인 줄 알았던 제게 다양한 밴드들의 음악을 접하게 되는 경험이 음악적 스펙트럼을 넓혀준 계기가 되었죠.
이 밖에 정말 외국인들밖에 없었던 이태원 등 SNS가 없었던 시절이기에 지역구별로 특별한 문화 자체가 유니크하다 보니 그 안에서 신이 형성됐어요. 지금은 선택지가 다양해지다 보니 각자가 형성되고 있는 힘이 오히려 약해졌다고 봐요. 저는 그렇게 다양한 문화의 격동기를 살아왔어요.(웃음)
Q. ‘치킨인더키친’에서 소울트레인이 되기까지, 크라브바이닐바, 칠성레코드, 디스코나니 등 예명 또는 브랜드 네이밍에 관련된 비하인드가 있다면.
A. 이전 답변에서도 가볍게 말씀드렸지만 소울트레인은 70년대 미국에서 방영된 실제 흑인음악 프로그램이에요. 우리가 먹는 치킨이 과거 미국 남부 목화농장에서 키우던 닭을 목화 씨유에 튀겨먹은 것이 유래된 점을 착안했고 특히 소울,디스코,힙합 등 우리가 즐겨듣는 현대 음악의 뿌리와도 같은 흑인음악을 투영한 가게를 만들고자 했어요.
크라브바이닐바는 과거 운영했던 경성째즈크라브의 단어에서 착안한 이름 큰 뜻을 가지고 있진 않아요. 크라브는 과거 1930년대 서양식 옷과 춤을 추며 행동하는 것을 모던보이, 모던걸이라고 하며, 그런 이들이 모여서 공연하며 우리나라 최초의 밴드가 결성됐었던 시기에서 따왔어요. 그 당시에 클럽을 일본식 발음으로 크라브라고 불렀거든요. 거기의 바이닐의 형태를 만드는 원료로써 일반적으로 상호에 사용하는 레코드 대신 바이닐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어요. 두 두 가지 모두 본질에 가까운 느낌을 주기 위해 그것들이죠. 칠성레코드 역시 건물 이름이 칠성이라서 단순하게 작명했어요.(웃음)
Q. 햇수로 9년 차가 넘어가고 있다. 간혹 포스팅을 하며 커티샥에 탄산수 믹스 등 일반적인 치맥, 치쏘와는 다른 페어링도 추천하고 있는데, ‘소울 트레인’만의 페어링을 꼽자면.
A. 치킨은 기본적으로 튀김 요리라 차가운 샴페인, 샤블리, 리즐링 등 화이트 계열 와인들과는 너무나 잘 어울려요. 커티샥은 저렴한 위스키에 속하지만, 탄산수에 섞어 마시면 청량감은 여느 싱글몰트만큼 시원하기에 추천하고 소울트레인에 오신다면 리즐링에 드실 수 있도록 현재 준비 중에 있습니다.
Q. 그만큼 와인에 푹 빠져있어 최근 와인 모임도 하고 있다고 들었다.
A. 와인을 마신 지는 꽤 오래된 일이지만 당시에는 라벨도 너무 어렵고 여러 주종과 섞어 먹는 일이 잦다 보니 지금 같은 열정으로 마시지 않았으나 20년도 겨울부터 단골로 오신 병원장님과 잦은 모임으로 와인의 맛을 느끼게 되었고 현재는 정기 모임은 세 군데 정도 나가고 있습니다. 언젠가 페이크매거진 에디터들과도 와인을 하고 싶네요.(웃음)
Q. 공간을 하나씩 늘려가고 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신경 써야 할 것들이 한둘이 아닐 것 같다.
A. 최대 4개까지 운영을 한 적이 있었고 그만큼 에너지를 쏟았으며 코로나 이후에는 2개로 줄였습니다. 신경 쓸 일이야 당연히 많아졌지만 즐겁게 받아들였고 지금도 역시 똑같은 마음으로 운영 중입니다.
Q. 그간의 모든 공간에서 다양한 음악과 문화가 묻어난다.
A. 식당에 대한 기억의 조각이 맞춰지는 건 인테리어와 음악인데 이 두 가지의 균형이 맞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게 제 평소 생각이에요. 소울트레인은 *AOR, 디스코, 올드스쿨이 나오면서 주 소비층인 대학생들에게 지지받고 있어요. 크라브 바이닐바 역시 4천여 장의 판을 보유하고 있어요. 장르에 대해 굉장히 열려있는 편이라고 생각해요. 블루스부터 라틴, 볼레로, 보사노바, 시티팝, 국내외 가요 등 어떤 장르에 규정짓지 않고 재밌게 음악을 선곡하자는 마음을 알아봐 주셔서 그런지 천안에 많은 리스너들에게 좋은 평가를 얻고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해요.(웃음)
*AOR - Album-Oriented Rock, 혹은 Adult Oriented Rock. 70~80년대 미국의 FM 라디오 음악방송에서 주로 송출한 음악들을 통칭하는 명칭. 이름에 걸맞게 프로그레시브 록이 주를 이루었으나 재즈, 소울 음악과 같은 장르도 포용한다.
Q. 썬데이 하우스에서 디제이로도 활동하며 다시금 다양한 지역구로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다.
A. 10년을 넘게 알고 지낸 동생들과 서울의 경리단을 베이스로 작은 동호회의 느낌으로 출발했어요. 이제는 규모가 점점 커져 다양한 파티와 공간에서 노래를 틀고 있어 썬데이하우스와 함께 같이 성장해 가는 느낌을 받고 있어요. 아직 6개월여 했으니, 앞으로 더 열심히 해 볼 생각입니다.
Q. 여러 장르 중 디스코를 선택한 이유도 궁금하다.
A. 디스코는 현대 댄스음악의 뿌리라 말할 수 있는 장르. 소수자의 음악으로 출발했지만 가장 대중화를 이룩한 아이러니가 있는 장르이면서도 현재도 거듭된 진화를 통해 다양한 멜로디를 선사하기에 디스코의 매력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Q. 크라브바이닐바를 운영할 땐 클래식한 무드의 스타일을 선보이는 것 또한 특징이다.
A. 참 독특해 보일 수 있어요. 하지만 음악과 패션은 항상 함께 발전하는 영역이에요. 가벼운 예시로 비틀즈의 모즈룩처럼요.(웃음) 재즈 뮤지션들 또한 모두 테일러가 있어서 자기 양복을 맞춰 있고 공연하기도 했어요.
이런 문화적인 부분에서 영향을 많이 받아 처음 사회생활 해서 받은 월급으로 24살에 첫 수트를 맞췄어요. 그렇게 인터넷에 떠돌던 피티워모의 사진을 비롯해 다양한 클래식 수트 브랜드와 구두 메이커를 공부한 지가 꽤 되었습니다.
패션과 음악은 함께 발전하는 영역임을 깨달은 뒤로 틈나는 대로 아이템들을 모았고 현재는 국내 유명 편집숍의 오너분들과도 연이 되어 함께 와인을 마시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성공한 덕후, 크라브에서는 날씨만 허락한다면 최대한 넥타이를 매려고 하는 이유 역시 점점 가벼워지는 남성들의 옷차림에 때로는 반드시 무게감 있어야 하는 날에 필요한 룩을 기억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Q. 오랜 기간 음악과 공존해 왔는데, 몇 가지 상황에 맞는 곡들도 추천해 줄 수 있을까.
A. 추천곡을 특정하는 것보다는 장르를 펼쳐 놓으면 다양하게 들어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과거에는 지금처럼 음악 플랫폼이 활성화되어 있지 않다 보니 아티스트는 좋아하더라도 앨범을 구매해서 듣지 않는 이상 정확하게 찾아 듣기가 어려웠어요. 그만큼 가요 외의 장르는 일반 대중들에게 보급되기 어려웠던 상황이어서 다양한 장르를 접하기 힘들었습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어요. 누구나 좋아하는 음악을 찾아 듣기도 하고 과거의 음악에 빠진 젊은 사람들도 있어요. 어느 펍이나 클럽에 가면 처음 듣지만, 마음에 드는 곡을 따로 묻지 않고 음악 검색으로 알아낼 수도 있죠. 그만큼 다양한 음악적 취향을 가지기 좋은 시기라고 생각해요. 곡을 추천해 드리기보다는 보사노바, 소프트록 그리고 디스코 장르를 추천합니다. 한두곡 듣다 보면 알고리즘이 모든 걸 대체하는 시대니까요.
Q. 요즘 점차 집단에서 개인적인 경쟁 활동으로 늘어남을 느낀다. 자연스레 예비 창업자들 또한 늘어나고 있는데, 비교적 이른 나이부터 나만의 아이템을 무기로 여러 창업 또는 장사를 열고 닫기를 경험했다. 새로운 도전을 꿈꾸고 있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A. 창업자들의 나이가 점점 어려진다는 건 그만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반증하는 현상일 겁니다. 사회가 그들을 구조적으로 보호하고 좀 더 나은 일자리가 많았다면 이 치열한 세계로 발을 들이지 않을 터. 그래서 이른 창업보다는 최대한의 경험을 먼저 권하는 편입니다. 특히 프랜차이즈 창업은 강하게 반대하는 편입니다. 결국 경험이 부족하면 아무리 좋은 위치와 좋은 아이템을 갖고도 실패하는 게 자영업이라고 생각해요. 진부할 수도 있지만 결국 여러 경험을 통해 여유를 갖고 소자본으로 할 수 있는 일로 시작하는 게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Q. 모든 일들이 음악과 문화를 따라가고 있음을 느낀다. 여러 숍의 오너이자 디스코나니로써의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해진다.
A. 현재 운영하는 소울트레인과 크라브 바이닐바를 좀 더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게 목표에요. 요즘 무척 불경기라 그 부분에 가장 많은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Q. 'FAKE'의 의미를, 목적을 달성한 모습을 더욱 매력적으로 표현해 주는 행동이나 태도로 재해석하였다. 디스코나니에게 'FAKE'란?
A. ‘FAKE’라는 단어처럼 재기발랄한 단어가 많지 않아요. 타인의 시선을 속인다고 여겨지는 직관 안에 자기 자신의 다양성을 포장할 수도 있다는 은유로도 들립니다. 그래서 개인 내면의 페이크가 많을수록 삶은 풍성해질 것이라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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