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통해 재정의 된 공포. '조던 필'과 '마이클 아벨스'

“The difference between comedy and horror is music.”
“코미디와 공포의 차이점은 음악이다.” -조던 필-


공포란 어쩌면 웃음과는 정반대에 위치한 감정일지 모른다.

코미디언으로서 경력을 시작한 ‘조던 필‘은 공포 장르의 영화감독이라는 어쩌면 정반대의 위치한 직업으로서 스스로의 이미지를 탈바꿈했다. 그의 감독 데뷔작인 ‘Get Out’은 평단과 관객의 극찬을 받으며, 단순한 공포영화 이상의 사회적 메세지와 장르적 실험을 선보였다. 잇따른 작품 ‘Us’와 ‘Nope’역시 장르적 경계를 허물며 조던 필은 새로운 공포 장르의 개척자로서 자리매김 해왔다.

하지만 조던 필 영화의 진정한 공포는 화면 속 이미지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그는 공포의 핵심이 관객의 감정과 심리를 조율하는 데 있다고 이야기한다.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음악이다. 필은 코미디와 공포가 모두 관객의 기대를 조작하며 긴장을 유발하지만, 두 장르를 구분 짓는 요소로 음악을 꼽았다.

그의 공포 영화 속 서사를 음악적으로 완성해낸 이는 다름 아닌 그의 음악감독 ‘마이클 아벨스’. 필의 제의로 첫 음악감독으로서 발을 내딛은 아벨스는 전통적인 공포 음악의 클리셰를 넘어선 독창적인 접근법으로 영화에 심리적 깊이를 더했다. 단순한 배경음이 아닌 영화의 서사를 주도하는 요소로서, 그만의 공포를 재정의했다.


<공포음악의 클리셰>

공포 영화의 음악은 대게 반복적이고 예측 가능한 패턴으로 사용되어 왔다. 음악을 통해 긴장을 유발하고 특정 패턴으로 공포를 ‘예고’해 왔다. <Psycho>의 가장 유명한 장면 중 하나인 ‘샤워 살인 장면’에 삽입된 ‘버나드 허먼’의 음악은 날카로운 바이올린 스크래치를 사용해 공포를 극대화했다. <13일의 금요일> 시리즈는 ‘키-키-키, 마-마-마’라는 반복적이고 기괴한 음성이 제이슨의 존재를 암시하도록 했으며, <죠스>에서 ‘존 윌리엄스’의 유명한 두 음계의 반복 역시 긴장을 고조시키는 전형적 클리셰로서 자리잡아 왔다.

이러한 음악적 장치는 공포를 극대화하는데 효과적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함에 따라 긴장감이 희석된다는 단점을 가진다. 음악은 공포를 ‘예고’하는 도구로 사용되었을 뿐, 서사에 깊이를 더하거나 정체성을 형성하는 부분에서는 한계를 가진다.

The Iconic Shower Scene, Psycho(1960)
Jason Takes Manhattan (1989) - Jason vs. New York Scene
"You’re Going To Need a Bigger Boat", Shark Attacks Chief Brody

<부서지고 조각난 클리셰>

하지만 ‘마이클 아벨스’는 기존의 공포 음악의 공식을 따르지 않았다. 그는 창의성과 현대적 감각을 융합해 그만의 ‘독창적인 공포’를 만들어냈다. 그의 음악은 문화적 정체성, 친숙함의 변형, 공포 속 경외심이라는 세 가지 접근법을 기반으로 전개한다. 기존의 클리셰를 깨부수고 새로운 장르의 공포를 개척한 아벨스의 음악, 세 가지 작품을 통해 확인해보자.

<Get out> - ‘Sikiliza Kwa Wahenga’ / ⓒIMDB
“형제여, 조상들의 말을 들어라. 달려라! 너는 멀리 달려야 해! (진실을 들어라) 형제여, 조상들의 말을 들어라 달려라! 달려라! 자신을 구하기 위해, 조상들의 말을 들어라. “ -‘Sikiliza Kwa Wahenga’의 가사 中-


해당 음악이 삽입된 장면은 영화 속에서 크게 두 가지 장면이다. 첫 번째는 영화의 초반부 ‘GET OUT’이라는 타이포그래피와 함께 등장하는 숲 장면, 두 번째는 영화의 종지부라고 할 수 있는 경찰차를 타고 가는 엔딩 장면 이렇게 시작과 끝으로 나뉜다.

영화는 엄청난 후반부의 반전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지만, 사실 영화는 시작부터 주인공이 처할 위기에 대해 암시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숲 장면은 주인공이 여자친구의 부모님 댁을 방문하는 장면 속 배경과 일치하며, 그 장면 위 ‘Get Out’이라는 이 영화의 제목이자 가장 큰 스포일러를 음악을 통해 연출한다.

음악 속 들리는 목소리는 흑인 조상들의 경고를 암시하며, 동시에 주인공 크리스가 직면한 상황의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단순히 긴장을 유발하는 음향을 넘어서, 영화의 사회적 메시지를 강화하는 역할. 특히 흑인 사회 속에서 주로 사용되는 ‘Brother’이라는 영어 단어를 통해 은유적으로 인종이라는 사회적 주제를 상기시킨다. 하지만, 해당 노래가 ‘겟 아웃’에서 문화적 정체성을 기반으로 공포를 형성한다는 점은 단순히 ‘Brother’라는 단어의 사용 때문만은 아니다.

글의 서두에서 의미심장하게 읽었을 문구는 영화 ‘겟 아웃’을 봤다면 어디선가 들어봤을만한, ‘Sikiliza Kwa Wahenga’의 가사말이다. 의미를 예측할 수 없는 음악의 제목은 스와힐리어로 “형제여, 네 조상의 말을 들어라.”라는 의미를 가진다. 스와힐리어는 많은 아프리카 국가에서 사용되는 언어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뿌리와 연결된다. 따라서 이 곡이 영어가 아닌 스와힐리어로 구성된 것은, 흑인의 문화적 유산과 정체성을 강조하며 동시에 주인공 크리스가 자신의 뿌리와 관련된 경고를 받는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장치라는 것. 관객은 이를 통해 음악의 언어적 선택과 조상들의 목소리를 매개로 문화적 정체성을 전달하고 있다는 것을 은연중 느낄 수 있다.

Sikiliza Kwa Wahenga
<Us> - ‘Anthem’, 아이들의 목소리로 들리는 공포의 합창곡 ‘Anthem’. / ⓒIMDB
"I want it to sound like an evil march."
“이 곡이 사악한 행진곡처럼 들리기를 원해요.” -조던 필-

두 번째로 마이클이 공포를 만들어낸 방법은 불쾌한 골짜기 이론이라고 할 수 있는 친숙함의 변형이다. 이론에 따르면, 인간과 유사하지만 완전히 동일하지 않은 대상은 관람자에게 불쾌감과 공포를 유발할 수 있다. 이는 인간이 친숙하다고 느끼는 요소의 왜곡이 오히려 거부와 두려움을 촉발할 수 있음을 시사하기도 한다.

영화 <US> 속 공포는 이 청각의 불쾌한 골짜기에서 유발된다고 볼 수 있다. ‘Anthem’은 악기를 통해 공포를 형성하는 기존의 방식과는 달리, 아이들의 합창을 중심으로 음악을 시작한다. 일반적으로 순수하고 안전하다는 인식을 주는 아이들의 목소리는, 영화 속 전혀 다른 역할로서 작용한다. 아이들의 목소리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기괴하고 사악한 분위기, 그리고 왜곡된 목소리는 관객들에게 불안감을 조성하며 공포를 유발한다.

또한 예상과는 달리 음악에서 들려오는 가사말은, 사실 의미 없는 옹알이에 가깝다. 작곡가 마이클 아벨스는 이 곡을 작곡하며 “말도 안 되는 소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철학을 기반으로 가사를 만들었기 때문. 그는 신음, 한숨, 모음 등 가장 본능적인 소리들만으로 노래를 구성했으며, 이 과정에서 단어처럼 들리지만 실질적 의미를 가지지 않는 음절들로 구성했다. 이런 방식은 관객들로 하여금 지성보다는 본능과 감정을 통해 음악을 듣게 만들고, 영화 속 도플갱어의 혼란스러운 존재감과 맞물린다.

Anthem
<Nope> - The Run (Urban Legends) / ⓒIMDB
"Can a bad miracle exist?"
“나쁜 기적이라는 것도 존재할 수 있을까?” -영화 속 ‘OJ’의 대사 中-

<Nope> 속 OJ의 이 질문은 단순히 영화적 대사로 끝나지 않는다. 조던 필 감독은 이 질문을 통해 우리의 일상에서 벌어지는 비극과 기적의 경계, 그리고 그것이 구경거리로 소비되는 세태를 비판한다. 기적은 흔히 경이로운 일로 여겨지지만, 필은 이 개념을 전복시켜 충격적이고 파괴적인 사건도 기적의 일종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이 ‘나쁜 기적’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소비하고 있는가.

등장인물들은 모두 미디어와 구경거리에 얽매여 있다. 고디의 폭주 사건을 목격한 소년은 비극의 목격자로 살아가며, OJ와 Em은 진 재킷을 포착해 돈과 명성을 얻으려 한다. 심지어 진 재킷 자체도 사람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자 구경거리로서 여겨진다. 영화는 이처럼 인간이 비극적인 사건을 단순한 관람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과정을 그리며, 우리가 이 문화 속에서 무엇을 잃어가고 있는지를 묻는다.

영화의 주제 의식은 마이클의 음악을 통해 더욱 명확해진다. 영화의 클라이맥스 장면에서 사용된 ‘The Run (Urban Legends)’는 단순한 공포를 넘어서, 관객들에게 공포와 동시에 경외심이라는 복합적 감정을 심어준다. 그는 이를 설명하며 “우리가 그랜드 캐니언을 볼 때 느끼는 감정과 비슷하다”라고 말한다. 그랜드 캐니언은 경이로운 자연의 산물로, 한눈에 보았을 때는 압도적인 아름다움과 위엄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그 끝에서 떨어질 위험을 상상하는 순간, 경외감은 곧 두려움으로 바뀐다. 아벨스는 이러한 이중적인 감정을 영화의 공포적 요소로서 표현하려 한 것이다.

‘The Run (Urban Legends)’은 OJ와 Em이 진 재킷과 마지막으로 대면하며 목숨을 걸고 그를 유인하는 장면에 삽입된다. 이때, 음악은 단순히 클라이맥스의 긴장감을 조성하는 역할을 넘어 영화의 철학적 메시지를 구체화하는 중요한 장치로 작용한다.

음악은 긴박한 리듬으로 초반부를 시작한다. 긴장감 넘치는 리듬의 반복과 현악기의 선율은 관객에게 진 재킷의 위협을 상기시키며 불안을 조성하며, 그 긴장감은 곡의 중반부로 갈수록 점차 고조된다.

하지만 이 긴박함은 단순히 불안감을 조성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곡의 후반부로 갈수록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선율이 가세하며, 관객에게 단순한 두려움을 넘어선 경외감을 선사한다. 마치 진 재킷이라는 존재가 자연 그 자체의 위대함을 상징하듯, 음악은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거대한 힘 앞에서 느끼는 복합적인 감정을 청각적으로 전달한다.

이 곡은 단순한 공포를 전달하려는 것이 아니다. 관객으로 하여금 은연중 진 재킷이라는 존재가 단순한 괴물로 느껴지지 않도록 의도한 장치이다. 진 재킷은 단순히 공포의 대상이 아닌, 인간의 탐욕과 두려움이 빚어낸 존재이기 때문. 이 곡의 웅장한 선율은 단순한 긴장감으로 시작해 경외심으로 끝나며, 관객이 진 재킷을 단순한 위협이 아닌 하나의 거대한 자연이자 서두에서 밝힌 ‘나쁜 기적’의 상징으로서 받아들이게 한다.

The Run (Urban Legends)

<공포라는 코미디의 역설>

필의 영화에서 공포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과 본능 속에 숨겨진 복잡한 역설이다. 마이클 아벨스의 음악은 이러한 서사를 청각적으로 형상화하며, 기존의 클리셰적인 공포를 타파하고 이들만의 독창적인 공포가 형성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그들이 만들어낸 공포는 우리를 단순히 두렵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마주하기를 꺼리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공포란 과연 낯선 것에서 오는가, 아니면 우리 자신에게서 비롯되는가? 이들의 작품은 공포를 코미디처럼 접근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감정으로 재정의하며, 관객에게 끊임없는 긴장과 성찰의 시사점을 남긴다.





Editor / 박수민(@suumn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