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미국을 입다, 가짜 멕시칸(Mexican), 진짜 치카노(Chicano)

치카노(Chicano), 미국에 거주하는 멕시코계 미국인을 일컫는 말. ‘치카노’라는 단어는 처음부터 우리의 인식 속 ‘치카노’를 뜻하지 않았다. 치카노 이전 ‘촐로(Cholo)’라는 단어로, 멕시코계 미국 혼혈이라는 점에서 흔히 순종이 아닌 잡종이라고 낮잡아 보는, 인종 차별적 단어에 불과했다. 멕시코에서도, 미국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이방인인 셈.

이들은 1960년대 흑인 인권 운동과 맞물려 미국 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치카노 운동을 통해 우둑하니 하나의 인종 문화로 자리 잡는다. 오직 인권 운동 하나뿐이었을까. 우리의 인식 속에 자리한 로우 라이더, Mr. Cartoon의 타투, 후리한 메리야스에 디키즈, 그리고 흰색 발목 양말과 코르테즈 조합은 자연스레 ‘그들의 문화’로 분류된다. 과거 자신들을 향한 차별과 억압에 저항하며 얻어낸 치카노 문화, 장르 불문 독보적인 문화적 뿌리를 드러내는 촐로의 언어를 찾아 나섰다.



< 촐로의 정체성, 주트 슈트(Zoot Suit) >

어떤 옷은 단순 유행을 떠나 특정 찰나에 멈춰 한 장면이 된다. 미국의 거리에서 등장한 ‘주트 슈트(Zoot Suit)’가 바로 그런 옷이다. 크고 과장된 어깨, 잘록한 허리 실루엣에 긴 기장의 더블 브레스티드 재킷, 넉넉하게 흐르면서 발목에서 좁아지는 페그톱 스타일의 팬츠. 저항의 힘을 내딛기 전, 주트 슈트는 미국의 재즈 문화와 함께 등장한다. 재즈와 스윙 음악이 활기를 차던 1930년대 후반, 재즈 아티스트들은 꽉 끼는 신사복 대신 몸을 넉넉히 감싸면서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는 주트 수트를 입고 활동하면서 젊은 피의 치카노, 파추코(Pachuco)의 관심을 끌었고, 밤새 주트 슈트를 입고 춤을 출 정도로 이들은 열광했다.

단순히 젊은 층의 트렌드에 그쳤다면 만인의 패션이 되었겠지만, 1940년대 2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국 정부의 군수 물자 절약 정책을 통해 옷감 사용을 제한시켰고, 그 결과 필요 이상의 원단을 사용하여 제작한 주트 슈트는 세태의 눈엣가시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언론에서 마저 주트 슈트를 입는 이들을 ’애국심 없이 낭비하는 자’로 낙인을 찍으며 등을 돌렸다.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는 ‘파추코의 반미(反美)적 행동’에  혈안 되어 있었으며, 1943년 6월 미 해군 장병과 백인 폭도들이 주트 슈트를 입은 라틴계 청년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해 인종차별과 사회적 갈등으로 번진다. 일부는 탁월한 ‘세정효과’라며 주트 슈트의 폭동을 높이 사는 시선이 자자했고, 폭도 대신 주트 슈트를 입은 촐로들을 체포해 갔다. 이후, 미국 정부는 주트 슈트를 금지시켜 잠재웠다.

파추코에게 주트 슈트는 과장된 화려함으로 멕시코계 미국인의 가난한 현실을 덮었고, 럭셔리를 향한 반항의 심볼이 되었다. 찰나의 유행이 아닌 치카노 문화의 근원이 되어 차별과 억압 속에서도 자신들의 정체성을 담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 디키즈 874와 나이키 코르테즈, 그리고 화이트 슬리브리스, 치카노 삼합 >

저항의 힘을 디딘 혼란스러운 시대를 뒤로하고 차츰 이들의 정착이 안정세를 찾았을 때, 블루칼라의 유산 ‘디키즈’가 찾아왔다. 20세기 초반부터 워크웨어를 타깃 해 시작한 디키즈는 내구성이 강해 작업용 바지로 명성을 알렸고, 멕시코계 미국인들이 주로 육체노동에 종사하면서 디키즈는 자연스럽게 치카노의 피복이 된다. 이방인으로서 오직 살기 위해 일해 온 이들에게 디키즈 874는 저렴하고 튼튼하기에, 더더욱 사랑받을 수밖에 없었다.

“디키즈 874를 입었다.” 그렇게 치카노가 되는 건가.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니다. 나이키 코르테즈와 화이트 슬리브리스까지 갖춰 입었을 때, 우린 치카노의 에티튜드를 이해할 수 있다. 단순해 보이지만 나름의 룰이 있다. 거침없어 보이는 갱단이 이렇게 섬세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드레스 코드의 메인은 카키색 디키즈 874와 화이트 슬리브 리스, 화이트+블루 or 레드 컬러웨이의 나이키 코르테즈. 디키즈 874 전면부에 칼 주름은 빼놓아 서는 안된다.


이 작은 디테일은 치카노 스타일이 단순 멋을 위함이 아님을 알려준다. 그들은 오랜 세월 동안 미국 사회에서 이민자, 노동자와 같은 이미지로 비졌다. 고정관념을 타파시키기 위해 ‘clean, crisp style’, 말 그대로 세련되고, 말끔하게 정돈된 스타일로 치카노의 인식을 전복시키고, 자신들의 품위를 유지하려 했다. 이를 위해 디키즈 팬츠의 칼 주름 뿐 만 아니라, 얼룩 하나 없는 순백의 슬리브리스와 LA 치카노 갱단 Sureños가 쏘아 올린 나이키 코르테즈의 조합은 노동자 계급에서의 탈피이자 인종 차별을 향한 자기방어적인 에티튜드를 표한다. 하나의 소속감, 모종의 권위, 우리가 생각하는 아이코닉한 치카노 스타일은 그렇게 완성된다.

이렇듯 로스앤젤레스의 뒷골목에서 시작된 치카노가 우리에게 이토록 친숙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웨스트 코스트 힙합과 로우라이더, Mr. Cartoon의 타투, 윌리 차바리아 등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치카노는 물론 OG 치카노까지, 멕시코계 미국인의 스타일로만 남아있기 보다 짙은 정체성이 그대로 담긴 하위문화가 여럿 존재하고 있다.


< 소통의 창구, 웨스트 코스트 힙합과 로우라이더 >

웨스트 코스트 힙합의 대가, Dr. Dre와 Snoop Dogg. 그들의 노래엔 로우라이더가 빠지지 않는다. 공연 중에 “지금부터 로우라이더처럼 바운스를 탄다!”라는 표현과 함께 모든 관객의 양손을 머리 위로 들어 위아래로 흔들게끔 한다. 그들의 로우라이더와 함께. 웨스트 코스트 힙합에 있어 로우라이더란, 치카노 정신을 치켜세우는 데에 일조한다.

Dr. Dre - Still D.R.E. ft. Snoop Dogg

미국 자동차 문화의 발전으로 등장한, 당시 뜨거운 감자 ‘핫로드(Hot Rod) 커스텀’. 누구보다 가볍고, 누구보다 빠르게 튜닝하는 것이 경쟁이 되었던 문화이다. 하지만 핫로드의 가격은 치카노들에겐 비싼 존재였기에 겨우 번 돈으로 중고 쉐보레를 구매해 커스텀 하기 시작한다. 여느 때와 같이 해가 져도 반짝거릴 만큼 화려한 외관으로 튜닝하고, 핫로드와는 달리 ‘Low and Slow’라는 문구로, 차고를 최대한 낮추고 트렁크에 모래주머니를 넣어 한껏 가라앉은 ‘로우라이더’를 완성시킨다. 로우라이더 문화는 백인 문화인 핫로드의 반문화이자, 하나의 커다란 커뮤니티로 치카노의 유대감을 단단히 했다.

이렇듯 웨스트 코스트 힙합에게 로우라이더는 자신들의 출생 성분을 명확히 하고, 어린 시절부터 보고 자라온 환경과 겪어온 문화에 대한 존경이 담겨있다. 멋 또한 빼놓을 수 없었을 터.


< 치카노 타투의 대부, Mr. Cartoon >

La Raza, 치카노가 무엇보다도 강조해 왔던 것. 멕시코계 미국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에겐 ‘우리 민족’으로 통용되는 개념이다. 차별과 억압에서 살아남기 위해 민족의 조직력은 필히 존재했어야만 했고, 자신들이 겪은 사회적 투쟁의 결과물을 마치 영원한 신념으로 남겨두기 위해 하나 둘 몸에 새기기 시작한다.

초창기 ‘치카노 타투’는 지금처럼 예술의 영역으로 치부하지 않았다. 미국 교도소 문화에서 시작되어, 텍사스 갱단과 교도소 내 멕시코계 수감자들끼리 모여 마치 표식을 남기듯, 다른 수감자들과 구별지었다. 수감자들의 출소 이후, 거리로 나가게 된 타투는 그래피티 아티스트 Mr. Cartoon의 눈에 들어오게 된다.

‘Teen Angels’ 매거진에서 처음 마주한 블랙 앤 그레이의 타투는 그에겐 마치 콜라주 같았다. 장미의 모습을 한 여자의 머리부터 해골 분장한 사람의 모습까지. 하나의 것이 다른 것으로 변해 다른 의미를 파생시키고, 각각의 이미지가 이어져 하나의 타투를 완성시킨다는 점에서 Mr. Cartton에게 치카노 타투는 그래피티와 또 다른 매력을 가져다주었다.

본격적으로 그는 Teen Angels 속 작품들을 낱낱이 모방하기 시작했고 성모 마리아, 예수와 같은 종교적 아이콘은 물론 해골과 피에로 타투를 손에 익혔다. 지속된 연습 끝에 Mr. Cartoon은 그들의 타투에 로마자, 올드 잉글리시, 커시브의 문구가 주로 등장한다는 것을 깨닫고, 이때까지 그가 그래피티에서 써왔던 그래픽을 치카노 레터링에 더해 자신만의 정체성을 찾게 된다. Mr. Cartoon의 스타일은 치카노 타투에 예술성을 불어 넣게 된 트리거이자, 교도소 타투라는 인식에서 벗어나게 된 계기가 된다.

1990년대와 2000년대에 걸쳐 에미넴, 드레이크, 코비 브라이언트가 그에게서 타투를 받고, 네이버 후드, 반스, 디젤 등 각종 패션 브랜드와 협업한 덕에 위엄만 가득했던 판에 팝 컬처로서의 한 걸음 내디디며 지금의 치카노 문화가 우리의 인식에 자리하고 있다.


< 치카노 한 방울, 윌리 차바리아 >

주트 슈트, 디키즈 874와 나이키 코르테즈, 그리고 화이트 슬리브리스. 뚜렷한 아이덴티티는 때론 누군가에게 영감의 도처가 되기도 한다. 캘리포니아 출생의 멕시코계 미국인, 윌리 차바리아는 자신이 자란 환경에서 답습한 저항정신과 서브컬처를 하이패션에 접목시켰다.

무지 티셔츠 혹은 폴로셔츠를 과한 실루엣으로 소화해 내던 치카노 복장을 차용해 오버사이즈의 버팔로 티셔츠와 같은 아이템을 제작하고, 과거 촐로 정체성의 뿌리인 화려한 추트 슈트의 드레이프성에 윌리 차바리아만의 세련된 테일러링을 더해 치카노의 현대적 재해석을 도맡았다.

OG 치카노와는 달리 억센 느낌은 분명 덜하다. 서브컬처와 맞닿아 있기 보다 하이패션에 가까우니 말이다. 하지만 윌리 차바리아의 패션은 언제나 사회적 이슈를 다뤄, 멕시코 이민자, LGBTQ+, 노동 계층의 삶을 패션 런웨이에 조명하며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리고 그 메시지들은 치카노의 문화가 지역적인 서브컬처를 넘어 표현을 위한 한 가지의 매개체로서 나아갈 수 있음을 증명한 계기가 된다.

웨스트 코스트 힙합이 나오는 로우라이더, 순백의 슬리브리스 탑 아래 치카노 타투, 그리고 오버사이징한 카키색 디키즈(Dickies) 팬츠 위로 롱 삭스와 나이키 코르테즈. 자유분방한 거리 한가운데에 태어나 세대를 거쳐 계승되는 치카노의 저항과 연대의 상징이다. 그 안에는 노동자의 피로가, 치카노 갱들의 역사와 형제애가, 그리고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자기 자신에 대한 선언이 깃들어 있다. 피 튀기는 싸움도, 극악무도한 범죄 여력도 어쩔 수 없다. 문화이기 이전에 나름의 생존 방식이자, 그들의 삶이었기에.







Editor / 이정민(@jeongmlnle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