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짜일까 천재일까 바흐의 거장 ‘글랜 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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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친구의 소개로 처음 그를 알게 되었다. 클래식 기타에 잔뜩 빠져있던 그 친구는 가끔 영상통화로 그동안 연습한 기타 연주를 선보이곤 한다. 몰두해 있는 그 친구의 모습이 멋있어서 가장 좋아하는 클래식 아티스트가 누구냐고 물었다. 그러니 영상 하나를 보내주었다. 사실 클래식이라곤 몇 개의 유명한 교향곡과 몇 명의 대표적 클래식 음악가들밖에 몰랐었기에 친구가 보내준 영상에 대한 흥미가 그리 크진 않았지만 왜 이렇게 그 친구가 클래식을 좋아하는지 알고 싶었다.
친구가 보내준 2분 남짓한 흑백 영상 속엔 한 남자가 피아노에 작은 틈이라도 나면 언제든 고개를 비집어 넣을 듯 몰두한 채로 현란한 연주를 보여준다. 이 남자가 바로 글랜 굴드다. 캐나다 출신의 클래식 피아니스트 글랜 굴드는 20세기 가장 위대한 피아니스트를 꼽는다면 항상 등장하는 바흐에 능통한 거장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워낙 괴짜 같은 성격과 행동에 평생을 괴짜와 천재 그 사이에서 살아갔다.
< 괴짜: 혼자가 좋은 아이 >
글랜 굴드의 괴짜같은 모습은 어린 시절부터 보여졌다. 태어날 때부터 손가락을 잘 움직이는 모습 때문에 의사로부터 피아니스트 아니면 의사가 될 아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그는 그 기대에 부응 하듯 천재적인 피아노 실력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은둔생활을 일삼았고 사람과의 만남을 멀리했다.
오죽하면 그의 피아노 선생님이었던 ‘알베르토 게레로’는 물론 그의 어린 시절 몇 없는 친구 ‘로버트 풀포드’는 그를 “늘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아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22살 처음으로 녹음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통해 세계적인 거장으로서의 데뷔를 하게 되는데 녹음 당시 그의 모습을 묘사한 모습을 보면 정말로 괴짜 같다는 생각이 든다. 6월 햇빛이 내리쬐는 뉴욕에 나타난 그는 보기만 해도 더운 코트와 머플러에 베레모와 장갑까지 낀 채 뉴욕의 물은 마실 수가 없다며 두 개의 물병을 들고 나타났다고 한다.
< 천재: 그 누구보다 바흐를 잘 아는 사람 >
글랜 굴드의 천재성을 설명하기 위해선 바흐라는 역사적인 작곡가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가 필요하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바흐라는 음악가는 기존 화성음악으로 불리던 음악의 형태가 아닌 다성음악의 형태로 작곡한다. 그의 대표작 <푸가>에도 사용된 이 기법은 피아노로 볼 때 왼손은 반주 오른손은 멜로디 형태의 연주가 아닌 각각의 손에서 다른 멜로디만을 연주하고 그 멜로디들이 균형 있게 맞아떨어지는 그 지점에서 미학을 찾아낸다.
바흐의 음악에 정통한 굴지의 뮤지션들은 4~5개의 멜로디를 동시에 연주해 내곤 한다. 이런 바흐의 곡들은 연주하기 매우 어려울뿐더러 웬만큼의 음악적 지식과 청각으론 모든 멜로디를 구분해서 듣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글랜 굴드는 달랐다. 그의 전기를 담은 영화에선 그가 모든 멜로디를 구분해서 들을 수 있었다고 알려진다. 그렇기에 글랜 굴드는 그 어떤 사람보다 바흐가 의도한 멜로디들의 조화를 이해하며 연주할 수 있었다. 이런 크나큰 장점은 그를 감히 누가 따라 조차할 수 없는 독보적인 연주자로 거듭나는 큰 이유가 되었다.
< 괴짜: 언제 어디서든 그를 따라다니던 의자 >
글랜 굴드의 연주 영상들을 보면 한 가지 다른 영상과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그가 앉아 있는 의자다. 등받이가 없는 벤치 형태의 일반적인 피아노 의자와 달리 그의 의자는 항상 팔걸이와 등받이가 있는 형태이다. 여기서 더욱 놀라운 건 영상에 나오는 모든 의자가 똑같은 의자라는 점이다. 그는 평생동안 그 곳이 어디든 매번 같은 의자를 가지고 다녔다.
이 상징적인 의자는 그가 어린 시절 굽은 모양새로 피아노를 치는 버릇 때문에 이에 맞춰 아버지가 특수하게 제작해 준 접이식 의자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의자의 뼈대는 고무로 이뤄져 있어 그의 움직임에 따라 의자가 따라 움직이곤 했다. 말년이 되어선 이 의자가 다 부서져 받침 부분은 물론 바닥을 지탱하는 깔판들도 다 나가떨어져 같은 규격의 새로운 의자를 만들 법도 했지만, 그는 언제나 이 의자를 고수했다. 아마 그에게 이 의자는 그저 앉는 용도를 넘어 더 큰 의미를 지니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천재: 스타카토를 레가토처럼>
피아노 연주 기법 중 ‘스타카토’라는 기법은 다들 알다시피 한음 한음을 끊어서 치는 주법을 이야기한다. 이와 반대로 ‘레가토’라는 기법은 모든 음이 부드럽게 연결되는 것처럼 들리게 만드는 연주 기법을 말한다. 두 기법은 완전히 반대 극에 있는 기법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기법에 대한 이해로 글랜 굴드의 연주를 들으면 신기한 점이 한가지 있다. 대부분의 연주를 ‘스타카토’ 형태로 치지만 ‘레가토’처럼 들린다는 것. 이는 마치 영상 기법 중 여러 사진들을 이어 하나의 부드러운 움직임처럼 보이게 하는 스톱모션 기법을 떠올리게 한다.
그의 이런 연주 특징은 그가 다른 연주자들보다 뭔가 다른 무언가를 느끼게 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의 이런 고지식하지만 이보다 명료하고 섬세할 수 없는 터치들은 아직까지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바흐의 권위자라고 불리도록 만들었다.
글랜 굴드는 1964년 4월 10일 LA 공연을 마지막으로 공연 무대를 영원히 떠났다. 그의 이별은 그리 명예롭거나 아름답진 못했다. 그의 완벽주의적인 성격은 다양한 변수가 도처에 널린 라이브 연주를 거부하게 만들었고 그가 음반으로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수준이 되자마자 연주 무대에서의 은퇴를 결정했다. 관객과 청중을 극도로 싫어한 그는 은퇴 선언 이후에 다른 사람의 공연조차 보러 가지 않았다.
그에게 음악과 피아노는 누군가를 위한 형태로서 자신에게 존재하기보단 오롯이 본인만을 위한 형태로 존재하길 원했던 것이다. 음악과 자신의 자아 사이에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길 바랐던 그는 지금까지 우리에게 세상에 하나뿐인 바흐를 들을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Editor / 김수용(@_ful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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