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YOBONG(효봉포차)
ㅇ
모든 것이 빨라지고 가벼워지는 디지털 시대이다. 디지털의 편리함 때문인지 트렌드 또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패션과 예술은 물론, 음식과 직업 등 다양한 카테고리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최근 가장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 낸 카테고리를 꼽자면 “음식”이지 않을까.
가지각색의 개성을 드러내는 이들이 모이는 홍대 뒷골목, 자신의 이름을 내건 포차가 자리잡고 있다. 정효봉이 운영하는 “효봉포차(@hyo1bong)”. 10년이 넘게 익숙해진 자신의 경험을 딛고 오늘도 새로운 음식을 선보이고 있다. 여느 쉐프처럼 화려하고 오감을 만족 시키는 그런 음식은 아니다. 단지 술이 좋아서, 술에 가장 어울리는 맛있는 안주를 만들다 보니 탄생한 음식들이다. 하지만 결과물은 단순하지 않다. 그의 음식은 때론 그만의 작품이라고 느껴지기도 한다.
수많은 맛집 사이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자영업자의 현실은 치열하다. 치열함 속에서 자신의 색깔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그의 음식이야기와 정성을 만나보자.
Q. 자기 소개 부탁한다.
A. 홍대에서 효봉포차라는 술집을 10년째 운영 중인 정효봉이라고 합니다.
Q. 마포구에 N년째 이름을 내건 ‘효봉포차’의 시작이 궁금하다.
A. 지금은 홍대 클럽거리 근처에서 운영하고 있지만, 처음에는 돈이 없어 홍대 변두리에서 조그맣게 시작했어요. 요식업에 특별한 뜻이 있어서 창업한 건 아니었고, 단지 제가 술을 좋아했던 지라 요식업 일을 해보지도 않고 무턱대고 시작했습니다.(웃음)
Q. 중식을 기반으로 다양한 메뉴를 선보이고 있다. 효봉포차만의 차별점일까?
A. 처음엔 닭똥집,오뎅탕 같은 전형적인 포차 그대로였어요.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술집보다는 중국집 같은 곳에서 술 마시는 걸 선호했거든요.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음식을 안주로 내놓다 보니 자연스럽게 중식 기반이 되었습니다.(웃음)
효봉포차 대표 안주인 “데빌치킨”만 봐도 한국의 폐백닭 원형에 전통시장 통닭 느낌으로 튀겨낸 안주지만 밑에 깔린 소스는 중식 양장피 소스예요. 차별점이라면 데빌치킨에서 느낄 수 있듯이 다른 “흔히 볼 수 없는 비주얼”의 안주가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어요. 우리 가게에서만 먹을 수 있는 안주는 곧 우리 가게를 찾아야 할 이유가 되니, 이 부분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또 다른 특징이 있다면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방문한다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술집을 차리기 전, 그림을 소개하는 블로그를 10년간 운영했었거든요. 그때의 구독자들이 가게를 방문해 주시고, 지인들에게도 추천해 주셨죠. 그래서인지 예술을 좋아하거나 관련 업계에 종사하시는 분들이 자주 가게를 찾아주는 편인거 같습니다.
Q. 항상 예술에 진심인 모습을 보여주곤한다. 10년간 운영한 블로그에도 다양한 장르의 국내·외 작품들을 소개하고는 했는데, 이 블로그의 근황이 궁금하다.
A. 사실 블로그는 코로나 이후로 거의 포스팅을 못 하고 있어요. 팬데믹으로 인해 운영하면 가게 4곳을 폐업하면서 경제적으로 타격을 심각하게 입었고. 이를 복구하느라 현재는 장사에만 몰두하고 있어요.
예전에는 블로그를 아주 열심히 운영했어요. 제가 블로그 활동을 통해 추구했던 건 네 가지였어요. 첫 번째로 국내에서 보기 힘든 예술 정보를 전달함으로써 예술을 하는 분들이 참고할 수 있는 레퍼런스를 제공하고 싶었고요. 두 번째로 다양한 예술 작품을 추천함으로써 사람들이 이런 작품을 통해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갖길 바랬고, 세 번째로 저 역시 전문 지식은 없다만 전문용어나 어려운 단어는 최대한 피하면서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그림을 거부감 없이 쉽게 접하길 바랬어요. 네 번째로 가끔은 폭력적이거나 선정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다소 수위가 높은 예술을 이따금 추천하곤 했는데 예술가들이 자극을 받고, 자신들의 창작 활동을 좀 더 과감해지길 바랬습니다.
지금은 여건상 포스팅을 못하고 있지만, 사정이 나아지면 다시 블로그 활동을 이어나갈 생각입니다.
Q. 마포구를 시작으로 이태원, 건대 등 20~30대가 많은 지역에는 항상 효봉포차가 자리잡고 있었고, 지금도 젊은 손님들과의 만남이 지속되고 있다.
A. 제가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해서 손님들과 자주 소통하는 편입니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개인 계정으로 가게 홍보를 하고 있는데, 그걸 보고 찾아오시는 손님들과는 처음부터 이미 어느 정도 친밀도가 있어서 대화가 더 자연스러워지더라고요. “찾아주셔서 감사하다” 인사 드리며 술 한잔 권하고 대화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친해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매일 매일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죽을 것 같긴 합니다.(웃음)
Q. 오랜 시간 외식업에 몸담은 만큼 단골손님도 많을 것 같다. 단골과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을지?
A.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단골손님이 가게 대관해서 소소한 약혼식(?) 같은 이벤트를 열었던 적이 있어요. 결혼 발표하고 지인들한테 청첩장을 나눠줬는데, 정말 보기 좋았던 장면이었어요. 그때를 생각하면 저도 사랑하고 싶고, 결혼도 하고 싶더라고요.(웃음)
Q. 매번 새로운 음식을 개발하고 리뷰한다. 그리고 사라진 메뉴들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음식이 있는가.
A. 지금은 판매하고 있지 않은 초창기 메뉴인 ‘도미탕수’와 ‘숭어찜’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도미탕수’는 도미를 튀겨서 탕수소스를 부은 음식이었고, ‘숭어찜’은 숭어를 튀긴 후 매운 중식 소스를 부어 완성하는 음식이었습니다. 장사가 잘 되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많은 노력을 쏟아 부었던 시기의 안주들이라 이 두 음식을 꼽았습니다.
영업을 마친 새벽 시간에 탈진된 상태에 노량진수산시장에서 생선 떼와서 비늘 벗기고 내장 제거하는 등 정성스레 손질하고 꽤나 고생하게 만들었던 안주이기도 해요. 고생한 만큼 손님들이 좋아해 주셔서, 그 경험이 성장의 발판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Q. 음식 개발을 위해 시장조사도 빼놓지 않고 있다. 기억에 남는 맛집이 있다면
A. 사실 먹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이에요. 원래 밥도 한 집이 마음에 들면 그 집만 가서 같은 메뉴를 먹곤 해요. 요식업을 하게 되면서 다양한 맛을 느끼려고 여러 가게를 다니지만 특별히 기억에 남는 곳은 많지 않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좋아하는 가게가 두 군데 있어요. 저렴한 가격에 LA갈비를 맛볼 수 있는 신촌의 “끼로끼로부엉이”와 집 앞 2분 거리라는 게 특히 마음에 드는 중국집 “환시앙”입니다. 음식 맛도 당연히 맛있고요. 이 두 곳은 계속해서 찾게 되는 거 같습니다.(웃음)
Q. 외부적인 시장조사 말고도 SNS를 통해 메뉴에 대한 의견을 묻는 것을 보았다. 이 의견들이 메뉴 개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A. 대중적인 취향을 나름 조사하려는 것도 있지만, 사실 손님의 참여 유발과 친밀감을 높이려는 목적이기도 합니다. 제자 자주 손님들하고 친하게 지내고 소통한다고 말씀드렸듯이, SNS를 통해 의견을 묻다 보면 별로 안 친한 손님과도 자연스럽게 대화 주제가 되기도 해요. 이를테면 ”저 이 안주 좋다고 설문했었는데 진짜 안주로 내셨네요“라고 손님이 먼저 기분 좋아하며 말을 걸면, 그때부터 ”맛은 어떠냐“부터 시작해서 ”와 줘서 감사 한잔 올릴게요“ 식으로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뤄져요. 그런 작은 대화들이 가게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거 같습니다.
Q. 효봉포차를 넘어 외식업계에서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하모니냉동, 와우산포차, 막집, 아폴로 등 각기 다른 주제를 가지고 넓혀온 외식업 경험에 대해서도 얘기하자면
A. 앞서 말씀드렸듯이, 저는 음식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에요. 사실 돈을 벌어 예술가들에 경제적으로 후원하고 싶다는 목표 때문에 열심히 장사를 하고 있을 뿐입니다. 다만, “좋은 음식을 팔아야 장사가 잘 된다”라는 장사꾼 마인드와 “내 집에 방문하는 친구들이 먹는 음식인데 좋은 음식을 만들어야 된다”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요식업에 임하고 있을 뿐입니다.
언급한 가게들은 모두 망한 가게들 입니다. 하지만 실패만큼 큰 교훈을 주는 것은 없다고 생각해요. 그 경험과 교훈들을 곱씹으며 요식업을 계속 해나갈거에요. 그리고 앞으로도 요식업을 계속하며 많은 돈을 벌어, 보다 많은 예술가들에게 경제적 지원을 할 수 있는 날을 꿈꾸고 있습니다.
Q. 최근 새로운 공간을 또 오픈했다고 알고 있다.
A. 네, 효봉포차 홍대점에서 불과 5분 거리에 “경호네” 라는 술집을 새로 열었습니다. 효봉포차가 중식 베이스라면, 경호네는 한식 베이스를 지향하고 있어요. 이 가게는 동업으로 시작했는데, 제 동업자 이름이 경호라서 가게 이름도 경호네입니다.
음식에 진심인 친구라 본인 이름 걸고 장사를 할 만큼 열정을 가지고 있어요. 저 역시 그 친구 음식을 좋아해 동업을 하게 됐습니다.
Q. 경호네에서 만나볼 수 있는 대표 메뉴 몇 가지 추천하자면.
A. 가장 먼저 ‘전라도식 소고기 들깨탕’을 추천합니다. 들깨를 아낌없이 많이 넣어 진한 들깨향을 내면서도, 된장과 고춧가루를 더해 구수하면서 칼칼한 국물 맛을 완성했어요. 여기에 부드럽게 삶은 소사태를 얹어 든든한 건더기까지 더했습니다. 이 메뉴는 밥겸술로 좋고 해장으로도 좋습니다.(웃음)
또 추천하고 싶은 메뉴로는 ‘묵은지 삼합’ 입니다. 야들야들한 삼겹살 수육, 잘 익은 묵은지 그리고 고소한 두부로 구성된 삼합인데, 묵은지는 삼겹살에 곁들여 먹기 좋게 쪄냈고, 두부는 이 둘과 완병한 궁금을 이룹니다.
그밖에 매일 새벽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직접 장을 봐오는 신선한 조개류와 생선구이도 술안주로 제격입니다.
Q. 여러 매장을 폐업했다. 그리고 다시금 새로운 발돋움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다.
A. 제 실력이 부족해 폐업한 곳, 코로나 때 폐업한 곳 등등 8개 매장을 정리했습니다. 스스로 부족함을 많이 느꼈고, 이를 채워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입니다.
원래는 혼자 운영하던 가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코로나 이후로는 동업 관계로 가게를 늘려가고 있어요. 제가 부족한 부분을 동업자와의 협력을 통해 메우는 중이에요. 현재는 경호네를 시작으로 다시금 홍대에 다양한 업종의 가게를 열 계획을 구상해 보고 있습니다.
가게 운영과 별개로, 앞서 말씀드렸던 예술가 후원에 대한 꿈에 대해서도 코로나 이후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원래는 ‘돈을 많이 번 후 풍족한 상태에서 예술가를 돕자’ 였지만, 지금은 ‘소소하게라도 지금부터 시작하자’로 방향을 바꾸게 됐어요. 그래서 내년, 2025년에는 그림 전시와 공연 등이 가능한 전시 공간을 차리려 합니다. 그곳에서 많은 사람과 교류하고 싶기도 하고요.
Q. 홍대에 위치해서인지 예술가 후원을 위해 과거에는 미술대회도 직접 열곤한걸로 알고 있다.
A. 미술대회를 열 당시에는 제 가게는 다섯 곳이었고, 순수익도 괜찮은 시기였어요. 예술가들을 후원하고 싶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그들과 접점을 만들고 싶었고요.
아직은 유명하지 않지만 독특한 감각과 가능성을 가진 분들을 찾는 게 목표였어요. 미술대회는 그런 분들을 발굴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고, 그 과정에서 예술을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어 의미 있는 시간이었죠.
Q. SNS를 통해 자영업에 대한 현실적인 이야기도 꾸준히 이야기하며 업계에서 직접 느껴볼 수 있는 지독한 환경들에 대해 꾸밈없이 이야기하고 있다. 자영업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간략하게 정리해서 현실적인 조언을 하자면.
A. “맛있는 음식을 만들면 알아서 장사가 잘 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은 하지 말자. 장사는 만드는 일이 아니라 파는 일이다.
당신의 맛있는 음식을 사람들에게 어떻게 알릴 것이며, 그리고 사람들이 굳이 당신의 가게를 와야 하는 이유를 명확히 생각해 보자. 이에 대한 뚜렷한 무언가가 없다면 창업은 신중하게 다시 고려하시길 권합니다. 세상에 맛있는 곳도, 가봐야할 이유가 있는 곳도 많다.
Q. 자영업과 요식업에 종사하다 보면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는 것도 중요하다고 느껴진다.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가.
A. 일이 곧 삶입니다. 요새는 워라밸이라는 미친 소리들을 하고 있는데(웃음) 저에게는 일이 곧 나 자신을 아는 과정이고, 나를 찾아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에서 오는 성취감이야말로 제 삶에 활력을 불어 넣어요. 지금 제가 있는 공간과 시간이 지옥이자 낙원입니다. 눈을 뜨고 감는 순간까지 그것들만 하루 종일 생각해요.
Q. 쉽지않다.(웃음) 이 직업과 열정을 유지하는 솔직한 이유를 묻고 싶다.
A. 돈을 벌기 위해섭니다. 그리고 번 돈으로 예술가들에 경제적 후원을 하기 위함입니다. 그들의 예술 작품이 우리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이를 통해 우리의 삶이 조금씩 바뀌길 원합니다.
Q. 마포구과 빛났던 과거에 비해 다양한 콘텐츠과 타 지역의 활성화로 빛을 조금씩 잃어가고 있다고 느껴진다.
A. 공감하는 바입니다. 문화공간이 많이 사라진 게 사실이죠. 하지만 여전히 홍대 만큼 예술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 없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굴지의 미대 홍익대학교가 건재하기도 하고 어찌됐든 저는 이곳에서 계속 무언가를 해나가려고 합니다.
Q. 그렇다면 마포구의 앞으로가 어떻게 될지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A. 내 앞날이 걱정돼 마포구의 앞날은 생각할 여유가 나지 않습니다.(웃음)
Q. 마포구를 넘어 이름을 내건 효봉포차. 앞으로 이루고 싶은 일이 있는지 궁금하다.
A. 앞서 얘기한 것처럼 예술가들에 대한 경제적 후원이 가장 큰 목표입니다. 이를 통해 이루고 싶은 궁극적인 가치는 다양성입니다. 맞고 틀림을 따지는 것이 아닌 “같고”, “다름”을 인식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합니다. 사람들의 생각을 바꿀 수 있는 힘, 그 힘이 예술에 있다고 믿습니다.
Q. 'fake'의 의미를, 목적을 달성한 모습을 더욱 매력적으로 표현해 주는 행동이나 태도로 재해석하였다. 정효봉에게 'fake'란?
A. “덜어내는 행위“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인터뷰 초반에 제가 가던 식당만 간다 했던 것처럼, 일이 곧 삶이지 굳이 워라밸이 필요하냐 했던 것처럼, 저는 입던 옷만 입고, 쓰던 것만 쓰고, 덜어냄으로써 삶을 단순화하려고 합니다.
이를 얼핏 들으면 스스로를 우물 안에 갇힌 개구리로 만드는 거 아니냐고 이해할 수 있지만 삶에서 불필요한 것들에 시간을 쓰지 말자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너가 정의하는 불필요한 시간을 줄여서 뭐하게?”라는 질문에 “필요한 데 써야지. 인생은 고작 100년 밖에 되지 않아!”라고 답하고자 해요. 그야말로 찰나의 시간이니까요.(웃음)
Fake Magazine Picks
웨스 앤더슨이 제작한 단편 영화 같은 광고 6선
YELLOW HIPPIES(옐로우 히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