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이 모인 것은 축복이자 과분한 사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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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록의 전설 < 핫피 엔도 >

이들은 일본 고유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서양의 영향을 받은 팝 음악을 만들 수 있다는 신호를 보냈고, 이는 일본 팝의 궤적을 영구적으로 바꾼 돌파구였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들 하지만 거대한 강과 산이 바뀌는 데에는 몇십년이 걸려도 모자랄 수 있다. 하물며 한 나라가 쌓아온 깊은 음악의 흐름이 바뀌는데에는 몇년이 걸릴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들에겐 3년. 딱 3년이면 이들이 일본 포크락의 역사를 바꾸기 충분했다. 1969년 결성한 핫피 엔도는 마츠모토 타카시, 스즈키 시게루, 오오타키 에이이치, 호소노 하루오미 4명으로 이뤄진 포크락 밴드이다. 맴버들 개개인이 모두 일본 음악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이기에 이 밴드의 상징성은 더욱 크다.

3년이라는 짧은 활동기간동안 남긴 음악적 유산들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크다. 완전히 일본어로 된 그들의 거대한 락은 개념적으로나 구성적으로나 깊은 이해와 스타일로 해석되었다. 이들은 일본 고유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서구의 장점을 받아들인 새로운 형태의 락을 선보이며 일본 가요의 새로운 문을 열었다.

Happy End - Kaze wo Atsumete (Live 1985)

< 우린 일본의 노래를 한다 >

60년대 중반 영국 락을 넘어 세계를 대표하는 밴드 ‘비틀즈’가 일본에 방문했다.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서구의 문화는 기성세대들에게 아니꼬운 비주류 문화에 불과했기에 많은 반대를 받았지만 결국 비틀즈는 일본 내에서 라이브 공연을 마쳤고 이 모습을 본 많은 젊은이들은 밴드 형태의 락음악을 시작하곤 했다.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밴드들은 대부분 일본의 고전적인 장르인 엔카와 브리티시 락을 결합한 형태의 음악을 선보였다. 물론 이 음악들도 일본 음악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르중에 하나가 되었지만 핫피 엔도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음악을 선보였다. 이들은 그룹을 결성할때 부터 일본의 정체성을 잊지않겠다는 다짐으로 외국의 음악적 요소를 차용하되 일본어 가사로만 이뤄진 락음악을 구사했다.

이런 고집스러운 부분은 이들의 이름에서도 나타난다. 영문으로 ‘Happy End’라는 이름은 본래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가타카나로 표기하는 것이 맞지만 이들은 일본에서 일상적으로 쓰이는 히라가나로 이를 표기하며 ‘핫피 엔도’라는 일본식 발음의 그룹명을 가지게 되었다.


< 롤링스톤즈 재팬이 선정한 100대 명반 1위 >

일본어로도 락 음악을 할 수 있다는 일념으로 야심차게 발매한 데뷔 앨범은 분명 새로운 도전이자 다른 세상을 열어낸 엄청난 앨범임은 분명하지만 사실 외국의 음악을 온전히 일본어로 노래를 하는 것에서 부자연스러운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기에 완벽한 앨범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평들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의심과 비난을 2집 앨범 <카제마치 로망>을 통해 증명해냈다. 멤버 모두 작곡과 작사에 능했기에 각자 작업한 곡을 차곡차곡 담아낸 앨범으로 일본어로 락음악을 창작 하는 것에 대한 의문에 종지부를 찍은 앨범이라고 볼 수 있다. 1964년 도쿄 올림픽으로 인한 개발로 급격하게 사라져가는 어린시절의 도쿄라는 컨셉으로 제작된 앨범으로 전체적으로 나른한 분위기가 특징이다. 완벽한 일본어 락과 음악성으로 한계라고 느껴진 일본어 음악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냈다.

특히 앨범의 대표곡 ‘바람을 모아’는 YMO 활동으로도 알려진 멤버 ‘호소노 하루오미’의 음악적 역량과 더불어 작사 담당 멤버 마츠모토 타카시의 풍부한 은유와 서정적인 가사가 돋보이는 기념비적인 곡이다.

Happy End - Kaze Wo Atsumete

< 4명의 재능을 담기엔 작았던 그룹 >

앞서 이야기한 얘기들로 이렇게 완벽한 밴드가 왜 3년만에 해체했는지에 대해 궁금할 수 있다. 이들이 해체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구성원 모두가 음악적 견해와 역량이 뛰어난 뮤지션들이었고 사실상 2집 앨범부터 서서히 각자 하고자 하는 음악의 형태가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1972년 말 이 전설적인 밴드는 마지막 앨범 <HAPPY END>를 발매하며 마지막을 맞이하게 된다. 해체 이후 제작된 앨범이기에 이 앨범에선 이미 각자의 뚜렷한 음악적 성향을 갖춘 새로운 뮤지션들의 모습이었기에 개인의 음악을 담은 옴니버스 형태의 앨범으로 발매하게 된다.


< 일본 음악을 뒤흔든 4개의 큰 줄기 >

각자의 활동을 시작한 이들은 뚜렷한 정체성을 바탕으로 독보적인 행보를 이어갔다. 리더의 역할을 한 ‘호소노 하루오미’는 일본 일렉트로닉 록의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낸 상징적인 그룹 YMO에 소속되어 활동했고, 작사에 큰 재능을 보였던 ‘마츠모토 타카시’는 특유의 애틋함을 담은 섬세한 가사 스타일로 일본을 대표하는 작사가가 되었다.

또 작곡 및 프로듀싱에 재능을 보였던 ‘오오타키 에이이치’는 레이블의 수장으로서 다양한 아티스트들을 발굴하며 키워냈고 마지막으로 엄청난 기타 실력을 가지고 있던 ‘스즈키 시게루’는 일본을 대표하는 세션이자 기타리스트로서 활동했다.

각자의 스타일과 개성으로 인해 해체된 전설적인 밴드는 그룹으로 활동했던 시간은 물론 개개인의 활동들까지 일본 음악 역사를 흔들어댔다. 해체 이후 13년뒤인 1985년 이들은 국제 청년의 해를 기념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재결합해 일본 음악팬들에게 상징적인 무대를 연출해냈다.

하지만 2013년 안타깝게도 그룹의 맴버 ‘오오타키 에이이치’가 사고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며 이들이 보여준 그룹으로서의 음악을 기다리는 팬들은 더이상 그들의 완전체 모습을 볼 순 없게 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언제나 많은 팬들의 가슴속의 전설적인 그룹으로 남아 있을 것이며 그리움과 동경의 대상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Editor / 김수용(@_ful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