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같은 가짜의 행렬, 착시의 미학 <트롱프뢰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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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란 랜팅크(Duran Lantink), 25 가을/겨울 파리 패션 위크의 주역. 한눈에 봐도 오해할 법한 가슴의 실루엣, 멀리서 봐도 탄탄한 몸의 모델, 바지를 입은 줄 알았더니 겨우 앞판만 가려둔 청바지, 지브라, 뱀, 각종 프린트와 패턴의 옷들까지. 가까이 다가올수록 선명해지는 실리콘 톱의 인공적인 질감과 관습을 깬 색다른 패션을 선보이며, 세간에 주목을 이끌었다.
가까이 보면 어딘가 어색해 보이지만 실제와 손 색할 바 없는 ‘진짜 같은 가짜의 행렬’. 듀란 랜팅크의 컬렉션은 단순한 시각적 장난에 불과했던 걸까. 그의 실험적인 도전은 오로지 도파민을 위함이 아니었다. 랜팅크는 이번 쇼를 통해 우리가 패션과 신체의 경계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에 대한 통찰력을 쥐여 주었으며, 트롱프뢰유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실재를 해체하고 다시 재조합하는 방식을 제시했다. 물론 그의 작업 방식이 전통적인 트롱프뢰유(Trompe-l'œil, 눈속임 기법)는 아니지만, 트롱프뢰유적 요소를 현대적으로 차용해 시각적 재미와 물음을 남긴 건 사실이다.


가까이 보면 어딘가 어색해 보이지만 실제와 손 색할 바 없는 ‘진짜 같은 가짜의 행렬’. 듀란 랜팅크의 컬렉션은 단순한 시각적 장난에 불과했던 걸까. 그의 실험적인 도전은 오로지 도파민을 위함이 아니었다. 랜팅크는 이번 쇼를 통해 우리가 패션과 신체의 경계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에 대한 통찰력을 쥐여 주었으며, 트롱프뢰유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실재를 해체하고 다시 재조합하는 방식을 제시했다. 물론 그의 작업 방식이 전통적인 트롱프뢰유(Trompe-l'œil, 눈속임 기법)는 아니지만, 트롱프뢰유적 요소를 현대적으로 차용해 시각적 재미와 물음을 남긴 건 사실이다.
모든 유머에 뼈가 있듯, 듀란 랜팅크의 유머러스한 트롱프뢰유 또한 보통의 눈속임으로 끝나지 않는다. 우리의 신체는 어디까지가 자연스러운 것이며, 어디부터가 조작된 것인가? 우리가 입는 옷은 오직 신체를 가리기 위함인가, 혹은 새로운 정체성을 창조하는 것인가? 와 같은 숱한 질문들을 남겼다. 듀란 랜팅크 이전부터 패션계에선 각기 다른 방식의 트롱프뢰유 기법으로 그들의 관념에 위트를 더해 왔다. 장 폴 고티에의 누드 드레스부터 와이프로젝트의 트롱프뢰유 시리즈까지. 속고 속이는 장난에 담긴 ‘진짜 의미’를 찾아 나섰다.


< 너 누군데, 나 트롱프뢰유 >
프랑스어로 ‘눈을 속이다’라는 뜻의 트롱프뢰유, 고대 그리스의 화가 제욱시스와 파라시우스의 에피소드에서 시작된다. 제욱시스가 그린 포도를 새들이 날아와 쪼아 먹으려 하는 모습을 본 파라시우스가 경쟁의 의미로, 벽에 커튼을 그렸고, 그 커튼을 제욱시스가 걷으려다 그것이 그림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패배를 인정하게 된 이야기. 사실적 묘사를 넘어 관람자의 인식을 조작하고 속이는, 기만에 가까운 재치. 여기서 트롱프뢰유의 본질이 생겨났다.
초현실주의의 대가, 살바도르 달리는 이러한 트롱프뢰유 기법을 이용해 현실과 꿈, 무의식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실험을 하며, 자신만의 독창적인 세계관을 그려나갔다. 달리의 회화는 트롱프뢰유의 묘사 기법에 머무르지 않고, 편집광-비판적 방법(PCM)을 통해 현실을 새롭게 인식하고, 존재와 비존재의 경계를 허물었다. 그의 작품에서의 사물은 고정된 정체성을 갖기 보다 끊임없이 유동적으로 변화하며 새로운 정물로 태어난다. 달리의 트롱프뢰유는 “눈을 속인다.”의 개념 보다 눈을 깨우는 강렬한 도구로 쓰였다.
회화에서의 트롱프뢰유가 상상과 무의식의 경계를 허무는 장치였다면 철학과 출신 패션 디자이너, 엘사 스키아파렐리가 그린 초현실주의 패션은 예술과 옷을 접합시키며 새로운 차원의 패션을 알렸다.



< 트롱프뢰유 패션 대선배, 엘사 스키아파렐리 >
패션계에 처음으로 ‘초현실주의’를 적용시킨 스키아파렐리, 그녀는 살바도르 달리, 마르셀 뒤샹, 만 레이, 장 콕토 등 당대 다다이즘에 일가견 있던 예술가들과 함께 활발한 교류를 이어갔다. 그런 그녀가 1927년에 선보인 ‘트롱프뢰유 스웨터’, 처음으로 패션과 초현실주의를 접목시킨 결과물이다. 언뜻 보면 니트 위에 리본이 묶인 모습을 하고 있지만 니트에 리본을 새겨 넣어, ‘보는 것’과 ‘인식하는 것’의 불확실함을 패션에 적용시켰다.


이후 엘사 스키아파렐리는 예술적 교류를 함께 했던 초현실주의 작가들과 협업하며, 예술과 패션의 경계를 허물기 시작한다. 그중에서도 살바도르 달리와 협업한 ‘Lobster Dress’와 ‘Tear Dress’는 달리가 직접 그린 그림을 그대로 프린트해 패턴으로 사용하거나 작품 속 한 가지의 포인트로 사용되었다. 특히 ‘Lobster Dress’는 순백의 오간자 드레스 위로 달리의 ‘붉은 랍스터’ 그림을 프린팅 해 작품을 선보였는데, 이때 사용된 ‘랍스터’는 달리의 작품에서 ‘남성성’, ’욕망’과 ‘금기’의 상징으로 해석된다. 스키아파렐리의 드레스는 절제된 우아함을 지닌 동시에, 그 안에 은밀한 관능을 숨기고 있음을 은유한다. 붉은 랍스터의 위치와 멀리서 보이는 ‘남성의 성기’ 모양을 띠는 랍스터의 형태. 트롱프뢰유가 처음으로 에로티시즘을 갖게 된 순간, 그 중심에는 엘사 스키아파렐리가 있었다.



< 트롱프뢰유가 장 폴 고티에식 에로티시즘을 만난다면 >
여성복에선 스키아파렐리, 남성복엔 장 폴 고티에. 그는 패션계가 갖고 있던 고정관념을 깨부수는 데에 일조한 디자이너 중 한 명이다. 엘사 스키아파렐리가 트롱프뢰유 기법을 패션에 적용시킨 선구자라면 장 폴 고티에는 순수 회화에서 벗어난 트롱프뢰유를 사용해 보다 더 현대적으로 확장시켜, 패션을 유희의 장으로 삼았다.
94년 ‘레 타투아쥬(Les Tatoages)’ 컬렉션에서 등장한 장 폴 고티에의 첫 트롱프뢰유. 타투 문양을 시스루 원단에 새겨 보디수트를 제작해, 마치 나체에 타투를 한 모델의 모습을 연상캐 한다. 그뿐만 아니라 99년 봄/여름 ‘Graffiti Goddess’에선 플라운스로 음부만 가린듯한 누드를 그대로 프린팅 해 ‘누드 드레스’을 만들었다.


그의 에로티시즘은 노골적인 노출이기 보다 사회적 금기를 비틀고 전복하는 도발에서 출발한다. 그렇기에 장 폴 고티에식 에로티시즘을 만난 트롱프뢰유는 몸을 옷으로 가려야 한다는 관념을 뒤집고, 오히려 옷이 우리의 몸을 드러내게끔 하는 방식으로 전개해 나갔다. 옷을 입은 우리의 모습에 장 폴 고티에의 신념이 담겨, 그 옷을 입음으로써 우리가 원하는 존재가 될 수 있도록 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그의 디자인 개념은 이후 Martin Margiela, Y/PROJECT, LOEWE 등 다양한 브랜드와 디자이너에게 영감을 주며 도발적인 행보를 이어갔다.


< 이정도면 티셔츠들도 헷갈려 할 거 같아요, 마틴 마르지엘라 >
초현실주의의 계보, 엘사 스키아파렐리, 장 폴 고티에, 그리고 마틴 마르지엘라까지. 마틴 마르지엘라는 장 폴 고티에의 수제자답게 닮은 구석이 제법 있다. 이 두 디자이너 모두 우리의 신체에 기인한 디자인을 선보이고, ’옷’ 자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초점을 둔다는 것. 하지만 관점은 서로 달랐다. 고티에는 옷을 통해 신체를 드러냈지만, 마르지엘라는 옷의 형태를 해체해 정체성마저 탈바꿈시켰다.


96 봄/여름 컬렉션에서 등장한, 테일러링 셔츠의 실루엣이 프린팅된 실크 의상. 처음으로 마르지엘라가 선보인 트롱프뢰유 패션이다. 나체의 모델에게 입혀 시스루 셔츠인지, 혹은 프린팅 반팔인지 아님 셔츠를 입고 있는 알몸을 프린팅 한 건지 알 수 없다. 이외에도 05 봄/여름 컬렉션 속 상의 베스트, 04 가을/겨울 컬렉션 ‘Chesterfeild’의 실크 탑, 그의 마지막 컬렉션인 09 봄/여름 컬렉션 속 더블 브레스트 재킷 프린티드 티셔츠 등 아이템과 시즌 상관없이 ‘트롱프뢰유’ 기법을 자신의 시그니처로 사용했다. 그리고 마르지엘라는 더 나아가 테이블, 소파 등에 흰색 패브릭을 덮어씌운 듯한 디자인을 선보이며, 패션을 넘어 장르 불문의 트롱프뢰유를 보여주었다. 마틴 마르지엘라는 사물이 본연에 갖고 있던 본질을 분해시켰고, 인식하는 방식 자체를 뒤흔들며 장 폴 고티에 이후 트롱프뢰유의 귀재가 되었다.



2009년 마틴 마르지엘라의 은퇴로 오늘날 트롱프뢰유 패션은 멈췄을까. 도전적인 실험 정신은 열기가 식을 줄 모르고 계속되었다. 마틴 마르지엘라가 자신의 브랜드를 떠나고 2014년 새롭게 부임한 존 갈리아노에 의해 마르지엘라는 다시금 부활을 맞이하게 된다. 16 봄/여름 컬렉션에서 트롱프뢰유와 해체주의적 실험을 담은 ’5ac’이 등장하며 메종 마르지엘라에서 트롱프뢰유의 재기를 알렸다.
< 잃어버린 유머를 찾아서, 오늘날의 트롱프뢰유 >
고대 그리스의 회화 기법에서 시작된 트롱프뢰유는 엘사 스키아파렐리의 초현실주의 패션을 거쳐 마르지엘라식 해체주의에 이르기까지, 시대가 변해감에 따라 점차 뼈가 담긴 유머와 위트로 전승되었다. 특히 현시대의 패션계에서는 이들의 족적을 따라 트롱프뢰유가 더욱 폭넓게 발전하며 상상과 현실, 무의식의 경계를 자극하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한 번쯤 상상했을 법한 2D 세계를 현실로 구현한 조나단 앤더슨의 픽셀 패션, 프라다의 프린팅 벨트 팬츠와 바이컬러 트롱프뢰유 울 니트, 장 폴 고티에의 누드 트롱프뢰유 부활을 알린 와이 프로젝트, 악동 발렌시아가의 란제리 프린티드 보디수트, 그리고 같은 형태지만 전혀 다른 소재로 사고의 틀을 깬 앤더슨벨까지. 최근 트롱프뢰유는 과거와 달리 디지털 문화의 확산과 함께 소비자들의 욕구가 자극적인 형태로 변화하면서 하나의 트렌드처럼 자리 잡고 있다. 또한 미니멀리즘의 강세 속에서, 포스트 팬데믹 시대를 맞아 패션계는 잃어버린 유머를 찾기 위해 더욱 유희적이고, 위트 있는 디자인을 선보이는 추세다.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해석된 트롱프뢰유는 모두 한 마음 한뜻처럼 다가온다. 때로 기만이 될 수 있는, 유머러스한 눈속임은 우리가 현실을 어떻게 인식하고 해석하는지에 따라 무궁무진한 가능성 가질 수 있음을 제시하고 있다. 셀 수 없는 가능성에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진짜인지, 혹은 또 다른 차원의 재현물에 불과한지조차 의심하게끔 만든다. 트롱프뢰유 패션은 일상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많은 ‘가짜’를 ‘진짜’로 인식하며 살아가는지, 우리가 믿고 있는 세계가 얼마나 쉽게 조작될 수 있는지를 드러내는 장치가 되었다.
트롱프뢰유의 계보는 단순 기법의 계승이 아닌,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들을 재창조하는 태도에 가깝다. 진짜와 가짜, 원본과 복제의 경계가 모호해진 시대에서, 트롱프뢰유는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들의 본질을 다시금 묻는 메시지를 남겼다.




Editor / 이정민(@jeongmlnl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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