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K COMPUTER] 그 이후, 신랄했던 ‘라디오헤드’의 시대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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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라디오헤드가 새로운 법인을 설립하며 2025년 새로운 계획을 준비 중인 것으로 밝혀졌다. 밴드는 RHEUK25라는 이름으로 유한 책임 조합을 설립하며 이전과 같은 방식이라면 법인과 함께 새로운 앨범을 공개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새로운 앨범을 맞이하기 전 아트록의 새로운 경지를 열었던 [Ok Computer] 그리고 이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Ok Computer]은 처음으로 직접 라디오헤드가 프로듀싱에 참여한 앨범. 미국의 음악 잡지 <롤링 스톤>에서 그들을 추켜세우고, 온갖 매체에서 1990년대 대중음악사를 통틀어 명반으로 꼽히는 걸작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신랄한 앨범은 우리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리고 기계가 인간을 대신하는 세상에 우리는 과연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는지, 각각의 생각들을 남겨두고 갔다. 그들의 음악은 단순한 경고가 아닌 지금 현재,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기술과 자본에 잠식당한 현대인의 불안을 야기하던 라디오 헤드는 인간 존재 자체를 자신의 실험대에 올려놓기 시작한다.
< 라디오헤드의 디지털 멜랑꼴리아, [KID A] >
실험적인 앨범이 성공을 거둔 이후, 자신들이 대중을 무시했다며 가감 없는 음악적 시도에 더욱 용기를 얻은 라디오 헤드, 어떤 방향성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지, 그리고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지 고민했던 터. 크나큰 변화 전엔 항상 수많은 충돌이 있는 법, 멤버들은 앞으로의 행보에 마찰을 겪게 된다. 라디오 헤드의 기타리스트, 에드 오브리엔은 더 이상 전자음악 따위 필요 없다며 자신들의 1집 앨범처럼 부드러운 기타 소리로 회귀를 바랐지만, 리더인 톰 요크는 멜로디는 오글거리고 새로운 음악의 세계를 우리가 개척해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이 시기 톰 요크는 운명처럼 IDM 뮤지션 Apex Twin의 앨범을 듣게 되고, 보컬 없는 전자음악은 기타보다 폭넓은 감정 표현이 전달됨을 깨닫게 된다. 결국 기타 대신 신디사이저를 잡은 라디오 헤드. 하지만 자신들만의 목소리로 메꾼 전자음악과 함께 감정 너머의 감각에 새로이 개안하는 라디오헤드만의 메시지는 달라지지 않았다.
난생처음 들은 사운드에 충격을 먹은 멤버들, 톰 요크는 그 반응이 자신들의 새로운 개척을 이뤄낼 거라고 믿었던 걸까. 어디로 튈지 모르는, 충동적인 전자 음악 사운드는 노래로 만들기엔 너무나도 날것이었지만 오히려 불완전함 속에서 무엇이 탄생할지, 일종의 기대감을 안겼다. 멤버들도 하나 둘 불완전함에 몸을 맡기며 예측할 수 없는 결과물에 온전한 즐거움을 쏟아냈다. 그 우연성의 결과물로 4집 앨범 [KID A]가 탄생한다.


톰 요크의 오랜 예술 친구 스탠리 돈우드와 함께 작업한 앨범 표지. 비주얼적으로도 그들의 실험을 담고자 표지 작업에 힘을 썼고, ‘Bryce 3D’라는 3D 그래픽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초현실적인 풍경을 디자인했다. 작업의 시초엔 당시 뉴스에서 자주 보도되던 발칸 전쟁과 코소보 사태와 같은 비극적인 사건이 맞물려, 삶의 기저에 깔린 디스토피아를 표현했다. 음악도 마찬가지. [OK Computer] 이후,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에 해답을 찾고자 노력했지만, 톰 요크는 저항보단 공포를 직면한다. 자신들의 전신인 밴드 사운드 대신 우주적이고 공허한 일렉트로니카 사운드, 그리고 모호한 표현들. 가사보다 사운드와 질감에 집중해 텍스트로 전달되는 직관적인 감정 대신 몸소 느낄 수 있는, 폭넓은 감상을 추구한다.
라디오헤드만의 스펙트럼을 만들기 위해 먼저 그들은 장르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해체해 기존 음악에 또 다른 음악적 다양성을 접목시켰다. 하드록과 프리 재즈 스타일의 곡 ‘The National Anthem’부터 팝 테크노 ‘Idioteque’까지, 믹스되고 변형된 다양한 종류의 음악이 섞여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리고 정형화된 음악을 풍자라도 하듯 샘플을 짜집기해 전위적 혁신을 일으켰다.
테크노와 밴드의 결합, 장르 자체가 라디오헤드인 곡이다. ‘Idiotteque’는 톰 요크가 기대했던 우연성의 산물이자, 가장 본능적인 음악이라고 일컫는다. 물질문명에 타락하고 있는 사회에 질문을 던졌던 앨범 [Ok Computer] 이후, 그들은 혼란과 종말론적 공포를 담았다. 자전적 이야기처럼, 개인을 대입해 볼 수 있었던 이전의 곡들과는 달리, 곡 가사 속 ‘나’는 마치 이분법적으로 나뉜 다수처럼 느껴진다.
좌절 대신 살아가려는 욕망과 혼란에 우왕좌왕하고 있는 개인 그리고 그 뜻을 함께하는 타자가 한데 모여 그 혼란 속에서 또 다른 투쟁을 일으킨다. 그 투쟁 안엔 전쟁, 환경 오염과 혐오들이 복잡하게 얽혀있고, 혼C 속에서 인간은 본질을 잊어버린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
환경운동가, 사회운동가, 포스트모더니즘, 이단아, 그들 이름 앞에 붙는 수많은 수식어가 있다. 우린 라디오헤드를 단순 아티스트라고 불러야 할까. 이 곡은 라디오헤드가 왜 다수의 별명을 갖게 됐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곡의 표면에선 모두가 가깝지만 두려워하고 있고, 그저 버티고 있는 상황에 불과하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하지만 ‘The National Anthem’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라디오헤드는 이 상태를 국가에 대입했다.
모든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 힘을 가진 특정 관념들, 그런 커다란 담론과 이야기는 결국 민족주의를 야기하는 하나의 시스템이 되고, 민족주의는 애국주의를 북돋아 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라디오헤드는 때론 전체주의가 개인에게 당위성을 강제로 주입하는 가능성을 이야기를 하며, 그들의 사회적 성향을 드러낸다. 모두가 가깝지만, 동시에 두려움을 갖고 있고 그럼에도 하나로 뭉친 우리가 ‘나라’ 혹은 ‘사회’를 위해 기여해야 한다는 전체주의의 광기를 타파하기 위해 메시지를 보낸다.
멤버들 각각의 음악적 취향을 마구 섞어 집단주의의 혼란을 표현하고, 불협화음 속 화음은 다원화된 세상 안 작은 이야기들을 은유하고 있다. 혼란 안에서 피어난 작은 화음은 각자의 이야기와 자주성으로, 타성에 젖은 집단주의를 타개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음을 알려준다.
이 시점, 라디오헤드의 음악은 아나키즘을 추구해야 하는 이유를 빼곡히 적은 대자보처럼, 강렬하다. “웃어”가 아니라 “웃자”로 끝나는 그런 대자보.
< 여긴 어디, 나는 누구 [Amnesiac] >
라디오헤드는 2001년, [KID A]의 연장선 [Amnesiac]을 발매한다. [KID A] 작업과 함께 진행한 앨범으로, 당시 녹음은 했지만 [KID A]에 수록되지 못한 곡들로 구성해, 1년 채 되지 않은 시점에 새 앨범을 낸 것. 더블 앨범으로 제작하고자 했지만, 멤버들 간의 충돌뿐 아니라 모두 소화해 내기엔 지나치게 난해한 곡들이 많았기에 라디오헤드는 독립적인 앨범으로 내게 된다. 같은 시기에 작업한 만큼 곡의 분위기 또한 매우 비슷했다. [KID A]에서 쓰였던 신디사이저 사운드, 클래식 음악과 재즈 뉘앙스를 엮어 만들어, 언뜻 들었을 때 B-사이드 앨범이라는 명칭까지 얻을 정도로 닮아 있다.
처음이 아닌 두 번째, 세 번째 만남이 [Amnesiac] 앨범에 매료되는 순간이다. 보컬 없는 곡들은 물론, 겨우 들을 수 있던 톰 요크의 목소리마저 왜곡되어 도통 들리지 않은 곡들이 허다했다. 인간 존재 자체를 탐구해 가던 라디오 헤드는 앨범 [Amnesiac]의 뜻 그대로 기억상실증에 관해 곡을 써 내려간다. 우리가 잊어가고 있는 것들 그리고 기억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번 앨범 표지 또한 [KID A]와 동일한, 그들의 오랜 조력자 스탠리 돈우드가 작업했다. 앨범 속 신화적 요소를 통해 영감을 얻어 돈우드는 런던을 자신만의 로마 신화의 배경으로 만들어 앨범 아트를 제작하게 된다. 스캔 한 오래된 책들의 빈 페이지, 닳아 버린 붉은색 커버와 가운데 미노타우로스의 모습. 신화적 요소와 함께 기억상실증이라는 앨범의 제목처럼, ‘어딘가에 두고, 잃어버린 책’ 같은 느낌으로 제작했다. 실제로 [Amnesiac]의 초판은 작은 붉은 책처럼 제작되었을 만큼 앨범 전체가 하나의 잊힌 기록이자, 그 기억을 되찾으려는 라디오헤드의 의도가 들어있다.
이 앨범의 정수라 할 수 있는 ‘Pyramid Song’. 독특한 피아노 리듬과 현학기를 키듯 연주하는 기타, 기존 음악 구성과는 달리 비정형화된 리듬감으로 익숙하지 않은 소리를 들려준다. 제목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피라미드 구조와 리듬이 관계가 있는 건 아닌지, 의문을 자아내기도 한다.
톰 요크는 이 곡을 죽은 자들이 강을 건너는 이야기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가사엔 “I jumped into the river”, “Black-eyed angels swam with me”와 같은 사후 세계로 가는 여정을 묘사하고 있다. 톰 요크는 이집트 미술 관련 전시를 보고 즉석에서 5분 만에 완성한 가사로, 고대 이집트의 사후 세계관을 떠올렸다. 죽음을 넘어 영원한 삶을 추구하는 상징을 통해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허물고 순환하는 우리의 삶을 표현한다.
[KID A]와 [amnesiac]의 21주년을 기념한 합본 앨범 [KID A MNESIA]. 이를 기념하기 위해 전시 또한 진행했는데, 이때 영상 속 ‘Pyramid Song’ 파트에서 4차원의 개념을 설명하는 ‘초구’가 등장한다. 이 초구는 스티븐 호킹 박사가 연구한 끝에 도달한 결론, 우주의 시공간에는 경계가 없다는 것을 잘 설명해 주고, ‘시간’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 담겨있다. 시공간의 경계 없이, 처음과 끝이 존재하지 않는 개념은 음과 양, 순환, 불교의 윤회와 일맥상통하다. 시간의 흐름은 직선이 아니라 끝없이 순환하며, 어쩌면 우리는 그 강 속을 영원히 부유하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이 앨범을 들을 때만큼은 우린 그런 존재다.
앨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Life in a Glasshouse"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우리를 불편하게 만든다. 재즈풍의 곡으로 트럼펫 연주자인 험프리 리틀턴을 섭외해, 장송가 스타일의 뉴올리언스 재즈 세션 위로, 톰 요크의 음울한 목소리가 쌓인다.
이 곡은 현대인의 사적 공간이 완전히 사라진 디지털 시대의 초상을 그린다. 타인의 시선 속에서 점점 갉아먹히는 존재, 투명한 유리 상자 속에 갇혀 외부 세계를 응시하는 자아. 제목에서 느껴지는 '유리 상자'는 감시와 노출, 그리고 사회적 압박을 은유한다. 트럼펫과 클라리넷의 불안정한 진행이 이러한 심리를 더욱 날카롭게 후벼 파는 곡.
< 우리는 더 잃을 것도 없어, [Hail to the Thief] >
21세기가 대동한 이래 라디오헤드의 축복은 끝이 없었다. 1997년 [Ok Computer]로 디지털 시대의 고립과 불안을 예견했고, 2000년 [KID A]와 2001년 [Amnesiac]으로 인간성 상실과 포스트모더니즘적 해체를 자신들의 실험대에 올렸다. 메시지와 함께 전달되는 음악적 스펙트럼은 전자 음악부터 재즈까지, 모호한 경계에 라디오헤드 자체가 장르가 되었다. 그리고 2003년 6집 [Hail to the Thief]의 등장. “도둑 만세”라니, 제목부터 정치적이다. 당시 미국 대선에서 조지 W. 부시가 플로리다 개표 논란 속에 대통령이 된 걸 조롱하는 말이기도 했다.
[Hail to the Thief]는 노골적으로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미국 정부에 대한 항의의 뜻을 전하려던 라디오헤드의 시도가 드러나는 앨범이다. 하지만 그들은 단편적인 정치적 사건과 행정부만을 비판하는 곡은 아니라고 말한다. 정치적 슬로건보다는 더 큰 맥락의 불안과 공포, 모든 것의 부조리함을 표현하기 위해 발매했다며, 강하게 부정한다. 물론 무엇이 진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전에 보여주었던 라디오헤드의 디스토피아적 세계관과 개인의 위기의식이 맞물리는 앨범, 그 지점에 [Hail to the Thief]가 자리하고 있다.
조지 오웰의 『1984』에서 따온 제목, 앨범의 오프닝 트랙, ‘2 + 2 = 5’. 곡 ‘2 + 2 = 5’는 전체주의 체제 아래에서 암울한 독재 세계를 그리고 있다.
‘2 + 2 = 5’라는 틀린 식을 제시하며, 우리가 알고 있던 사실의 왜곡을 통해 권력층과 대중 사이의 세뇌를 말하고 있다. 다수의 권력이 2 더하기 2가 5라고 한다면, 그게 사실이어야 하고, 사실이라고 믿어야 하는 게 현실이다. 라디오헤드는 이런 집단지성의 오류와 권력에 의한 무력감을 직시하고자 한다.
“당신은 그러한 공상가인가”, “나는 영원히 집에 있을래. 이곳에서는 2와 2를 더하면 항상 5가 되거든.”, 도입부의 첫 두 구절. 이 가사는 권력에 의한 무력감을 표현하고, 정치적으로 마비시키려는 지배자들의 태도에 비판적인 잣대를 들이민다. 하지만 집단 이전에 우린 이미 내면화된, 지배적인 정치 이념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먼저라는 진짜 메시지를 우린 이해해야만 한다.
‘2 + 2 = 5’는 수학적 오류에 대한 노래가 아니다. 우리가 받아들이는 모든 왜곡된 사실과, 그 속에서 무기력하게 굴복하는 태도에 계몽을 일깨우고자 한 곡이다.
앨범의 후반부, ‘Myxomatosis’는 라디오헤드 특유의 불협화음과 왜곡된 베이스 라인이 지배적인 트랙. “잡종 고양이가 집으로 돌아왔어”, “머리 반쪽을 들고서”, 가사가 전달해 주는 자극적인 이미지 안에서 직관적인 공포감을 드러내고 있지만, 맹목적인 공포만을 말하진 않는다.
곡 ‘2 + 2 = 5’ 이후, 사회가 만들어낸 거짓 정보와 조작된 미디어 속에서 우리는 감각을 잃고, 가사 속 감염된 토끼처럼 현실조차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간다. 왜곡된 진실에 붕괴된 개인의 인식 체계를 곡 ‘Myxomatosis’가 설명한다.
< 듣거나 말거나, [In Rainbows] >
4년의 공백기를 깨고 돌아온 라디오헤드. 그간의 음악적 도발만으로는 부족했던 걸까. [Hail to the Thief]에선 개인들의 행적이 사라지는 집단주의의 폐허에 대해 논하며, 스스로의 의지와 반하는 크나큰 동력에 맞선다. 이후 기존 체제에 대한 반감은 더욱 커져 동력의 중심부를 무너뜨리는, 행위 예술에 가까운 기행을 보인다.
어떤 음반사와도 계약을 맺지 않고, 산업적 자유를 얻은 라디오 헤드는 곧바로 그들만의 방식으로 음악을 발매한다. 기존에 했던 앨범 발표와는 달리 자신들의 공식 홈페이지에서 MP3 형식으로 다운로드해 누구든 자유롭게 들을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한다. 그리고 이 앨범은 ‘구매자’들이 내고 싶은 만큼 돈을 지불하고 음반을 사야 하는 것이라며, 대중 중심의 음악이 궁극적으로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일깨웠다.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자본주의 세상에 ‘pay-what-you-want’를 외치며, 대중음악의 판도를 뒤집고자 시도한 것. 앨범 [In Rainbows]는 자본주의의 이단아라고 일컫는 앨범으로, 라디오헤드에게 대중이란 어떤 존재인지, 그들에게 음반사는 어떤 존재였는지에 대한 솔직한 고백을 담았다.
15 step, 앨범 <In Rainbows>의 첫 번째 트랙이자, 이 앨범의 주제를 관통하는 곡이다. 곡 속 가사에는 새로운 시작 혹은 하나의 사이클이 끝나고 그보다 더 좋을지도 모르는, 다른 사이클이 시작됨을 알리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어쩌다 시작한 곳으로 돌아와 버렸지?”라고 물은 것처럼.
라디오헤드는 7집 앨범에서 1집 <Pablo Honey>를 톺아 보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 단순명료하고 직관적인 감정, 어쿠스틱과 함께 다시금 등장한 톰 요크의 부드러운 목소리. 그들은 회귀를 꿈꿨던 걸까. 그들이 말하고 싶었던 건 대체로 파괴 보단 새로운 시작에 가까웠다.
새로운 시작의 순환은 곧 영원 회귀, 이것이 라디오헤드가 말하고 싶었던 바. 시간의 순환으로서의 반복이 아닌 개인이 자신의 삶에 대해 자문해, 고통스럽고 후회되는 모든 경험을 포용하며 존재의 근본적 고뇌와 해방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묻는다.
다시금 마주한 ‘나’로 인해 기존에 고집해 왔던 형식과 의미가 흐려져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변화하지만, 결국 ‘나’는 서로 닮아간다. 다를 바 없는 자신을 돌아보며 고통을 자처하기보다 변덕스러운 변화는 항상 우리가 직면하고 있음을 라디오헤드는 말한다.
앨범 중반부 5번째 트랙, ‘All I Need’. 단순하게 엮인 베이스 라인과 톰 요크의 나지막한 절규가 이 곡의 전부다. 제목과 가사 또한 간단히 보아도 우린 이 곡이 사랑 노래라는 걸 알 수 있다.
‘나는 한 마리 나방’, ‘그저 네 빛을 공유하고 싶은’, ‘난 그저 벌레’, ‘밤을 탈출하려 애쓰는 네 곁에만 머물러.’ 그럼에도 라디오헤드의 사랑은 단순한 사랑이 아니었던 것 같다. 한 사람을 향한 강박적인 사랑과 집착, 곡의 후반부로 갈수록 감정의 요동은 폭발할 듯 터지는 현악과 신디사이저가 모든 걸 설명해 준다.
찌질하고 이상한 사람이라며 스스로를 깎아내린 1집 ‘Creep’ 의사랑 대신 ‘All I Need’에서는 집착과 강박으로 새로운 사랑의 형태를 표현하고 있다.
실패한 사랑에서 벗어나 보다 더 사랑의 본질에 대해 자문하며, 사랑은 아름답지만 동시에 넘쳐버렸을 때, 아름다움을 금세 붕괴시키는 힘을 갖는다. 찌질한 사랑 끝에 도달한 라디오헤드적 사랑이란, 집착과 강박.
<라디오헤드 포르노>
포르노 시청, 섹스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행위. 보통 오르가즘을 통해 섹스의 존재 자체를 일깨운다. 번식과 같은 생물학적 활동에 불과했던 관계들은 오늘날 우리에게 황홀감은 물론, 저릿하게 머릿속을 뒤집어 놓곤 한다. 하지만 오르가즘 없는 섹스는 무용지물. 우린 또다시 황홀했던 기억을 되찾기 위해, 베일에 싸인 무언가를 찾으려 애쓴다. 낱낱이 해체하며 기쁨에 찬 환상을 위해 해답을 찾아 나선 이들. 그렇게 마주한 포르노는 청자로 하여금 해답을 위한 환상이 아니라, 실재에 가까운 무언가로 다가오게 한다. 적어도 보고 있는 순간만큼은.
라디오헤드의 음악이 그렇다. 그들의 음악 속 정치 사회, 공포와 무의미함 그리고 사랑. 평소 갖고 있던 특정 생각에 우리가 몸소 분노하고 두려워하고 슬퍼하며 실재에 맞닿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듣거나 본다고 해서 본래의 경지에 다다를 순 없지만 우린 분명 느낄 수 있다.




라디오헤드의 환상은 현실보다 더 실재적일지도 모른다. 라디오헤드의 앨범 4집부터 7집까지의 메시지들은 이 세계의 기이한 특징을 설명하지만, 마냥 영화 같은 이야기는 아니다. 과다 실재에 다다를 만큼 그들의 이야기는 현실과 명확하게 분리해 내기 어렵다. 어느샌가 라디오헤드의 음악은 우리에게 진짜 오르가즘을 전해주고 있다. 느꼈던 황홀감, 반복되는 오르가즘, 라디오헤드의 시뮬라크르.
Editor / 이정민(@jeongmlnl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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