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펼쳐진 독창적인 실루엣의 향연

이번에 개최된 파리 패션위크는 단순한 쇼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이번 시즌, 많은 브랜드들이 과거의 규범을 넘어서는 독창적인 실루엣을 선보이며 새로운 패션의 지평을 열었다. 기존의 형태와 구조를 탈피한 실험적인 디자인들이 무대 위에서 빛을 발하며, 패션의 경계를 허물고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독특한 시각을 제시했다. 비선형적인 시간과 공간을 아우르는 컬렉션부터, 여성의 강인함과 독립성을 강조하는 디자인까지, 파리 패션위크는 그 어느 때보다 혁신적이고 다채로운 패션 세계를 선보였다.



< Undercover >

언더커버의 이번 컬렉션은 브랜드 35주년을 기념하는 특별한 시즌이었다. 디자이너 다카하시 준(Jun Takahashi)은 언더커버의 2005년 FW 컬렉션 ‘But Beautiful…Part Parasitic Part Stuffed’를 재해석하며,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서사적인 런웨이를 펼쳤다.

뮤지션 패티 스미스(Patti Smith)와 봉제 조형물 작가 앤 발레리 듀폰드(Anne-Valérie Dupond)의 영향을 받은 이 컬렉션은 한층 현대적인 무드로 다시 태어났다. 쇼의 시작은 긴 소매 드레스와 금빛 주얼리로 감각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어지는 룩에서는 챔피언과 협업한 크루넥 스웨트셔츠, 조거 팬츠, 오버사이즈 후디 등이 등장하며 애슬레저 감성을 더했다. 아우터에는 나비 자수가 섬세하게 더해졌고,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프린트는 라운지웨어 전반을 장식했다. 언더커버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패치워크 데님과 에이징된 면 소재의 수트로 텍스처 대비까지 보여주면 쇼를 한 층 더 풍부하게 만들었다.

언더커버의 아카이브 요소도 곳곳에 배치되었다. 뿔 장식이 더해진 어깨선과 강렬한 색감의 컨페티 재킷은 브랜드의 아이코닉한 디테일을 상기시켰으며 특히 피날레에서는 커다란 벌룬 드레스와 과장된 깃털 수트가 등장하며 극적인 연출을 선보였다. 천사와 악마가 대치하는 듯한 마지막 장면은 패션을 하나의 퍼포먼스로 확장하는 다카하시 준의 철학을 다시금 증명했다.

아카이브의 재해석, 럭셔리와 스트리트웨어의 결합, 실루엣의 극단적인 양극화 등 다채로운 요소를 담아내며, 언더커버만의 독창적인 패션 세계관을 선명하게 드러낸 컬렉션이다.


< Balenciaga >

항상 많은 논란을 불러오는 발렌시아가의 컬렉션, 이번 역시 뎀나 바잘리아(Demna Gvasalia)만의 방식으로 럭셔리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펼쳐졌다. 특히 이번 쇼는 그에게 더욱 의미 있는 순간이었다. 최근 뎀나 바잘리아가 발렌시아가를 떠나 구찌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되면서, 이번 컬렉션이 그의 마지막 발렌시아가 파리 컬렉션이 되었기 때문이다.

미로처럼 구성된 쇼장에서 시작된 이번 컬렉션은 뎀나 바잘리아 특유의 감각을 담아 오피스 룩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몸에 꼭 맞는 블레이저, 펜슬 스커트, 세련된 오버코트 등 절제된 실루엣이 돋보였으며, 이는 과거의 과장된 스타일에서 벗어나 한층 정돈된 느낌을 주었다. 최근 패션계에서 부상하는 오피스웨어 트렌드와 맞물리며 발렌시아가만의 세련된 미학을 다시 한번 강조했으며, 이어 우아한 이브닝웨어와 언더그라운드 클럽 문화를 반영한 스포츠웨어까지 등장하며 다채로운 스타일을 통해 컬렉션의 폭을 넓혔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푸마(Puma)와의 협업. 푸마의 로고를 좌우반전해 트랙슈트와 다양한 스포츠웨어에 배치했으며, 망가지고 찢어진 스피드캣이 가장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마지막을 장식한 것은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Cristóbal Balenciaga)의 유산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볼륨감 넘치는 패딩 드레스였다.

이번 컬렉션은 뎀나 바잘리아가 과거의 대표작을 되돌아보면서도, 보다 절제된 스타일을 통해 브랜드의 방향성을 재정비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과장된 실루엣에서 벗어나 정돈된 스타일을 강조한 이번 컬렉션은, 그의 마지막 발렌시아가 쇼였다는 점에서 더욱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 마치 새로운 시작을 앞둔 그가, 발렌시아가에서의 여정을 정리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 Alexander Mcqueen >

세 번째 알렉산더 맥퀸 컬렉션을 선보인 션 맥기어(Seán McGirr)는 이번 시즌 아일랜드 출신의 작가이자 대표적인 대문호인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와 댄디즘에서 영감을 받아 어둡지만 화려한 테일러링과 포멀 웨어를 선보였다.

기존의 강렬한 실루엣에 우아함을 더한 이번 컬렉션에서는 깃털 장식, 부드러운 벨벳과 실크 소재, 러플 블라우스 등이 어우러지며 극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날카로운 수트와 흐르는 듯한 드레스, 풍성한 코트에는 선명한 레드, 연한 라벤더, 네이비, 딥 그린 등의 색감이 더해져 강렬한 대비를 이루었다. 특히, 알렉산더 맥퀸의 시그니처인 해골 프린트가 곳곳에 등장하며 브랜드의 아이코닉한 요소를 강조했다.

한층 화려한 디테일도 눈길을 끌었다. 반짝이는 주얼 장식과 회오리처럼 휘감기는 메탈릭 자수는 페플럼 스타일 드레스, 봄버 재킷, 니트웨어 위를 장식하며 럭셔리한 감성을 극대화했다. 또한, 뾰족한 부츠와 버클 장식 가죽백이 강렬한 엣지를 더했으며, 2010년대 유행했던 알렉산더 맥퀸의 아이코닉 스카프가 다시금 무대에 오르며 SNS에서는 그를 그리워하는 다양한 반응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션 맥기어는 이번 컬렉션을 통해 전통적인 댄디즘에 현대적인 감각을 더하며, 알렉산더 맥퀸만의 강렬한 스타일을 더욱 세련되게 재해석했다. 클래식한 수트와 장식적인 요소의 조화, 강렬한 색채와 다양한 소재 활용은 브랜드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시대의 감각을 반영한 시도로 볼 수 있다.


< Alaïa >

지난 시즌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컬렉션을 선보였던 피터 뮐리에(Pieter Mulier)가 이번에는 파리로 돌아와 알라이아(Alaïa) 아뜰리에에서 새로운 컬렉션을 공개했다.

이번 쇼에서는 네덜란드 현대 예술가 마크 맨더스(Mark Manders)의 시공간을 초월한 듯한 점토 조각들이 공간을 채우며, ‘비선형성’이라는 개념이 컬렉션 전반에 녹아들었다. 청동기 시대 여신상에서 영감을 받은 실루엣과 브랜드 창립자 아제딘 알라이아(Azzedine Alaïa)의 아카이브 디자인이 결합되었으며, 특히 후드 스타일과 플리츠 디테일이 돋보였다. 여기에 메탈 장식이 적용된 유려한 드레이핑과 중력을 거스르는 듯한 실루엣이 시선을 사로잡았고, 하트 모양 컷아웃과 꽃잎 같은 폼폼 장식이 로맨틱한 분위기를 더했다.

피터 뮐리에는 이번 컬렉션이 개성과 독창성, 그리고 여성의 강인함과 회복력을 표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밝혔다. 시대를 초월한 아름다움을 탐구한 이번 작품은 알라이아의 정체성을 현대적으로 확장하는 동시에, 패션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 Anrealage >

일본 디자이너 모리나가 쿠니히코(Kunihiko Morinaga)가 이끄는 안리아레이즈(Anrealage)는 이번 컬렉션에서 ‘SCREEN’이라는 독창적인 콘셉트를 선보였다. 컬렉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검은색 옷을 입고 등장한 모델들의 의상이 한순간에 디지털 화면으로 변하는 경이로운 장면이 펼쳐졌다.

모리나가는 20세기 초 광고판을 메고 다니던 ‘샌드위치맨’에서 영감을 받아, 패션이 더 이상 고정된 형태가 아닌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줬다. 특수 LED 원사와 센서를 활용한 이번 컬렉션의 의상들은 색상과 패턴을 자유롭게 바꾸며 감정과 메시지를 전달하는 매개체가 되었다. 일본 기술 디자인 스튜디오 ‘MPLUSPLUS’와 협업해 개발된 이 기술은, 체크무늬 원피스가 서로 색을 주고받으며 변화하거나, 모델들이 모여들며 의상이 픽셀화된 TV 화면처럼 깜빡이다가 스테인드글라스 패턴으로 변하는 극적인 피날레를 연출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전통적인 울과 코튼을 고수하는 패션계에서 모리나가는 기술을 통해 의상을 끊임없이 변화하는 유기체로 만들고 있다. 아직 디지털 화면이 달린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미래는 낯설지만, 언젠가 이 기술이 발전하여 그의 실험적인 디자인이 우리의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날이 올지도 모른다.


< Noir Kei Ninomiya >

파리 패션위크에서 케이 니노미야(Kei Ninomiya)의 브랜드 Noir가 첫 공식 패션쇼를 연 지 10년이 흘렀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케이 니노미야는 여전히 같은 철학을 고수하며 패션을 실험의 장으로 삼고 있다.

이번 시즌, 그는 수작업으로 제작된 레진 코팅 조각과 독특한 장식을 활용해 ‘인간을 초월한’ 실루엣을 창조했다. 그의 쇼 노트에는 이번 컬렉션이 “이해하기 어려운 어떤 감정을 만들어내는 것”이 목표라고 적혀 있었다는 것이 이해가 될 정도로 컬렉션은 기묘한 매력으로 가득찼다.

골드 컬러의 리복 플랫폼 위에 선 이번 컬렉션의 의상들은 관객들에게 다양한 연상을 불러일으켰다. 산호초, 현미경으로 본 벌의 복부, 성게, 후광, 꽃다발, 유아용 모빌, 혹은 샹들리에. 여기에 극적인 헤어 스타일이 더해져 컬렉션의 시각적 매력을 한 층 끌어오렸다. 특히 골드 루렉스 니트와 하운드투스 패턴의 조합, 그리고 그 위를 장식한 커다란 파이프 클리너 리본들은 니노미야의 스타일을 유지하면서도 비교적 전통적인 의복 형식에 가까운 시도를 보여준 것이 특징.

여전히 혁신적이고 실험적인 컬렉션을 선보이는 케이 니노미야의 패션은 단순한 의상을 넘어, 이를 바라보는 이들의 감각과 해석을 비추는 하나의 미학적 존재로 자리 잡고 있다.


< Hodakova >

파리 패션위크에서 LVMH 프라이즈 2024 수상 후 첫 컬렉션을 선보인 스웨덴 디자이너 엘렌 호다코바 라르손(Ellen Hodakova Larsson)이 또 한 번 패션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오래된 모피 모자를 엮어 만든 거대한 ‘버블’ 코트, 남성 정장 바지를 연결해 완성한 독창적인 재킷, 심지어 현이 제거된 첼로를 저녁 드레스로 변형한 작품까지, 그녀의 컬렉션은 버려진 자재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업사이클링 패션의 진수를 보여줬다.

스웨덴 정부의 강력한 친환경 정책 속에서 실험을 이어가는 그녀는 디자인을 문제 해결의 과정이라고 정의한다. 바지를 보면 ‘이걸로 무엇을 만들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통해 이번 컬렉션에서 그녀는 바지를 장식적인 머리 장식, 유려한 재킷, 어깨를 드러낸 드레스로 변형하며 우리가 입는 옷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쓰레기와 소비, 그리고 패션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그녀의 디자인은 강렬한 스래시 기타 사운드와 함께 어둑한 조명 아래 펼쳐진 런웨이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Editor / 노세민(@vcationwithp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