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E SUN(박지선)
JEESUN
JEE SUN(박지선)
라이프 스타일 매거진 페이크 매거진(@fakemagazine_official)과 아트 셀렉숍 보이드(@the_bvoid)와 함께 협업 인터뷰 콘텐츠 <OUT OF THE FRAME>을 선보인다. <OUT OF THE FRAME>은 아티스트의 '일탈'이라는 소재로 작가와 개인의 삶에 영향을 준 라이프스타일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담았다. 세 번째 아티스트는 분절된 기호를 재조합해 특유의 형태감을 만들어내는 박지선(@jeesun.p.iece) 작가이다.
Q. 박지선 작가, 본인에 대한 소개 부탁한다.
A. 안녕하세요. 서울에서 조각과 가구를 중심으로 입체 작업을 하고 있는 박지선이라고 합니다.
Q. 평면의 선과 면, 입체 특유의 단단한 부피까지 느껴지는 감각적인 작업은 어느 방향에서 봐도 인상적이다. 작가의 독특한 조형은 어디서 모티브를 얻는가?
A. 주로 20세기의 미술사적 조각과 디자인에서 영감을 많이 얻어요. 제 작업에는 구상적 이미지가 잘 들어가지 않고 점, 선, 면, 매스와 같은 표현들이 조합되어 있는데, 과거 구축주의와 해체주의에서 그러한 조형을 많이 사용했거든요. 그 개념적 관념들도 작업에 영향을 많이 미치고요. 더 거슬러 올라가서는 그리스 조각의 동세도 많이 참고하려 합니다. 기본적으로 작업을 할 때 ‘정면성이 없는 조형’을 만들고자 많이 노력하는데 고전 조각이 그런 성격을 많이 띠고 있거든요. 여러모로 꽤 클래식한 것에서 새로운 모티브를 얻는 편이네요.
Q. 작품의 소재와 텍스처가 눈에 띈다. 즐겨 사용하는 재료가 있다면.
A. 특유의 손맛이 느껴지는 텍스처와 딱 떨어지는 라인감이 어우러지는 경계를 지키려고 합니다. 텍스처 부분은 시바툴의 점토적 성질을 이용해서 작업해요. 그걸 캐스팅할 때도 있고요. *시바툴은 거의 모든 작업에 과정이나 결과물에 들어가요. 흙과 유사한 점토의 질감이 가장 오랫동안 사용하고 익숙한 재료라서 다루기에 가장 쉽습니다.
그 외에 구조적으로는 합판, 스틸, FRP, 원목 등 각 작업의 형태와 목적에 따라 다양하게 사용합니다. 항상 다른 재료를 쓴다는 건 제작 과정 또한 일정치 않다는 뜻인데, 물성에 관심이 많아서 새로운 재료를 연구하고 과정을 수립하는 것을 즐기는 것 같아요.
* 시바툴 : 레진을 주성분으로 하는 고분자 수지로 실온에 경화되는 물질. 유토, 석분 점토, 클레이, 스컬피, 에폭시 퍼티와 함께 가장 많이 사용되는 모형 재료이다.
Q. 보통 하나의 작품을 제작할 때, 구상하고 기획하는 시간에 얼마나 할애하는 편인가?
A. 전체 과정을 10이라고 두었을 때, 구상이 4, 도면 및 구조 설계가 2, 제작 기간이 4 정도예요. 꽤 딱 떨어지는 작업을 하는 편이라 한번 제작에 들어가면 변경하기가 어려워서 제작 이전 시간을 최대한 많이 소요하려 합니다. 사실 구상 스케치와 구조적 설계가 동시에 들어갈 때도 있어서 이 시간에 엎어지는 작업들이 많죠. 특히 하나의 시리즈의 경우에는 개별로 구상하지 않고 전체적인 볼륨을 생각해서 한 번에 스케치해요. 평소에는 그렇지 않은데 작업 구상 단계에서는 변심이 엄청 잦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이 스케치로 가야지, 하고 다음날 갑자기 엎어버릴 때가 많아요. 하지만 마음에 드는 작업들은 비교적 빠르게 나오더라고요.(웃음)
Q. 작품 구상 과정에서 가장 많이 영감을 받는 매체, 혹은 모티브는?
A. ‘Rebuilt 시리즈’(조각)를 구상할 때는 디자인 제품들에서 영감을 얻어요. 반대로 퍼니쳐 작업들은 조각에서 영감을 많이 얻습니다. 저도 제 래퍼런스 이미지 분류를 보고 알게 됐어요. 조명 작업을 하려고 하면 디자이너들의 조명 디자인을 보는 게 아니라 피카소의 조각을 참고하는 식이죠. 이게 서로 상반되는 것에서 상호적인 시너지를 얻고 있더라고요. 저도 무의식적으로 그런 걸 보고 조금 신기했습니다.
Q. 가구 외에도 모빌 및 오브제 작업이 시선을 끈다. 앞으로도 박지선 작가만의 조형으로 더 다양한 형태의 작업들이 기대된다.
A. 오브제나 조각 작업도 항상 같이 병행하려고 합니다. 조각을 기반으로 디벨롭돼서 가구로 나온 것이라, 사실은 조금 더 제 베이스에 가깝다고 할 수 있어요. 항상 조각-가구 사이의 지점에서 풀어나가느라 고민이 많은데, 앞으로 ‘Rebuilt 시리즈’를 통해서 조금 더 많이 보여줄 생각입니다. Rebuilt 시리즈는 과거 모뉴먼트를 재해석하는 해체적 방식을 사용하고 있는데, 과거의 헤게모니를 지닌 모뉴먼트를 가져와서 제 기호적 언어로 변환시키면서 그 의미가 해체되는 과정을 설명하고자 하는 시리즈입니다.
Q. 취미의 또 다른 면으로 일탈을 설정했다. 박지선 작가에게 일탈을 꼽자면.
A. 저에게 취미에 대한 정의는 시간과 돈을 쓰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결국에 애정과 관심도가 가장 높은 곳에 비용(시간과 돈)이 들어가니까요. 일탈은 여기서 조금 불합리하거나 비효율적이라도 똑같이 비용을 소모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꽤 현실적인 사람이어서, 특히 본격적으로 작업하기 전에는 남들 취미 생활하는 돈으로 작업을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미 그때 스스로 작업이 하나의 일탈이라고 생각했나 봐요. 그게 발전되어서 현재 직업이 되어가는 과정에 있으니 일탈이 일상이 된 것 같기도 합니다. 굳이 작업 다음으로 시간과 돈을 많이 쓰는 부분을 꼽자면 음주 정도가 있는 것 같아요.(웃음)
Q. 다양한 주종을 좋아하며 술을 취미와 일탈로 생각하는 이들도 많이 있다.
A. 작업 다음으로 꼽는 것이 음주라는 게 재미없는 답변인데, 오히려 작업이 직업이 돼갈수록 취미를 잃어서 그런가 더 마시게 되는 것 같아요. 분명 학부 때는 작업이 마냥 재미있기만 했거든요. 아마 일로 다가오지 않아서 그랬겠죠. 음주가 노력 없이 효율적으로 시간을 즐길 수 있는 방식이니 접근성이 좋은 일탈이죠. 특히 컴퓨터로 작업한 날보다는 샌딩이나 조립 등 몸을 쓴 날에 많이 먹는 것 같아요. 물론 요즘은 줄이려고 노력 중입니다.
Q. 금전적인 부분이 안정적이지 않은 프리랜서 특성상 일탈을 갖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충족이 되어있는 상황이라면 어떤 일탈을 하고 싶은가
A. 금전적인 것이 충족되다면 저도 미술품을 사는 입장이 되고 싶어요. 사실 작가들도 많이 다른 작품을 사고 저도 살 수 있지만, 아예 공급자의 입장을 이해를 하지 못하는 ‘완벽한 소비자’가 되어보고 싶습니다. 작가는 공급자 입장이니 과정이 살짝 예상이 갈 때가 있잖아요. 아예 제작 프로세스를 모르는 채로 사면 같은 돈으로 소비하더라도 그 쾌감이 더 오롯이 느껴지지 않을까요? 근데 이번 생에는 조금 안될 것 같고 돈 많이 벌어서 작가님들 입장을 잘 이해하는 소비자가 되겠습니다.(웃음)
Q. 휴식을 억지로라도 취할 때 좀 비활동적인 행위를 하기도 한다.
A. 쉴 때는 유튜브 숏츠를 즐겨봐요. 이게 한번 보면 몇 시간씩 생각 없이 보게 되더라고요. 오히려 이게 없을 때는 시간이 나면 봤던 영화를 또 보고 또 보는 일을 했어요. 새롭게 콘텐츠를 이해하는 에너지를 소요하지 않아도 돼서 그런 것 같아요. 뭔가를 새롭게 받아들이는 것은 에너지가 드는 일이니까요. 인생에 새로운 정보가 유입되지 않으니 둘 다 진짜 비활동적인 행위네요.
Q. 일탈 이야기를 나눠보니, 우선순위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것 같다.
A. 저는 인생에서 우선순위 넘버링을 잘해야 현명하게 살아나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못하면 매 상황들이 굉장히 쉽게 역전되거든요. 그래서 제 마음속 우선순위에 대해 경계심을 갖고 지켜보려 합니다. 이게 하나의 제 라이프 스타일의 기준점이 되는 차트인 거죠. 근데 살다 보면 서로 꼬리에 꼬리를 물어서 섞이고 무너지기가 너무 쉬운 것 같아요. 그래서 열심히 마냥 하다가도 “1순위가 뭐였지?” 하고 되묻는 시간들이 꼭 저한테는 필요해요. 근데 참 어려운 게 1순위라고 생각한 것을 성취하더라도 알고 보니 0순위가 있을 때도 있고요. 중요하지만 균형을 유지하기 쉽지 않죠.
Q. 사소함과 일상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같다. 일상 속에서 얻는 영감 또한 궁금하다.
A. 작품에 색채를 사용하지 않는 편이어서 그런지, 형태, 균형, 구조 즉 쉐입이나 아웃라인 자체에 먼저 시선이 갑니다. 그 다음으로는 재료를 봐요. 비유를 하자면 옷을 고를 때 저는 먼저 핏을 본 후에 재질이 어떠한가 확인하는 순서로 구입하거든요. 비슷한 순서인 거죠.
일상 속에서는 건축 공간 속에서의 마감이 된 라인, 도심 건물들 사이의 보이드, 퓨처리스틱한 패션의 컷-아웃된 봉제 패턴, 초고가 외제차의 양감들이 눈에 많이 들어와요. 또 가구는 평소에 마주하는 일이 워낙 많아서, 눈여겨보고 습관적으로 만져보는 것 같아요. ‘혹시 이거 오리지널인가?’, ‘이거 마감 뭘로 했지?’, ‘어떤 재료 쓴 걸까?’ 이런 질문들은 새로운 공간을 가면 속으로 혼자 항상 생각하는 질문들입니다.
Q. 추상이 아닌 기호라고 표현하는 이유가 있는가
A. 작업 내에서 규칙을 두고 그 조형법을 사용해서 단순히 추상보다는 기호적 조형이라는 표현이 조금 더 맞아떨어지는 것 같아요. 저는 ‘분절된 기호’들을 재조합해서 그 완결성을 다시 찾아 나아가는 과정으로 작업을 진행합니다. 규칙 중에 하나가, 제가 정사각형이나 완전한 원형의 형태를 사용하지 않아요. 그것들은 제 작업 프로세스에서 완결된 형태로 간주하거든요. 그 외의 불완전한, 분절된 기호들이 재조합 되어서 조각으로 재해석되거나 가구로써 기능하게 프로세스를 지키고 있어요. 색채를 배제하는 것도 이 기호성을 조금 더 부각시키기 위함이 가장 큽니다. 물성이나 컬러도 중요하지만, 제 기호 체계를 먼저 봐주길 바라거든요.
Q. 가끔씩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지칠 때가 올 텐데 그때는 어떻게 해석을 하는 편인지 궁금하다.
A. 작업을 하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가끔 지칠 때가 있긴 한데, 제가 내린 결론은 이게 쉽지 않은 것은 내가 돈을 벌 ‘방법’을 내가 정해서 그렇다고 생각해요. 물론 직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돈은 아닙니다만, 어느 정도 소득으로 연결되어야 ‘직업’이 성립한다고 생각해요. 원래 돈 버는 방법은 세상에 엄청 많고 더 알려진 길들이 있는데, 굳이 제가 제 작업을 직업으로 돈 버는 방법으로 삼겠다고 한 거잖아요. 누가 시킨 일도 아니고. 그러면 그냥 제 선택을 인정하고 책임감을 갖고 다시 작업에 임하는 것 같아요.
Q. 그렇다면 작업적으로 또는 커리어적으로 지속적인 일탈이 생각을 깨고 계속해서 일어나야 할 것 같다.
A. 작업마다 제작 과정이 다르니 매 작업이 하나의 일탈이기도 하죠. 형태가 항상 다르고 쓰는 재료가 그에 따라 바뀌니까 작업이 어려울 때는 있지만 지루하지가 않아요. 작업하다 보면 혼자만의 시선에 빠지기 쉬운데, 제 스스로에 갇히지 않으려고 많이 애씁니다. 주변 동료 작가들의 피드백도 많이 주고받고 새로운 콘텐츠나 데이터들을 꾸준히 업데이트 하려 해요.
Q. 매 순간 작업에 대한 적극성이 눈에 띈다. 앞으로 선보일 박지선 작가의 작업물에 대해서도 궁금해진다.
A. 이번 하반기는 다음 스텝을 위해서 재료연구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다룰 수 있는 재료가 다양해지면 나오는 형태와 방식도 더 자유도가 커지니까요. 입체 작업을 하는 사람에게 재료 스터디를 계속하는 것은 필수적인데, 일에 치이다 보니 여유롭게 그 시간을 갖지 못한 것 같아요. 이번에 연구를 잘하면 새로운 형태와 개념의 시리즈를 내년 하반기에 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Q. 'FAKE'의 의미를 목적을 달성한 모습을 더욱 매력적으로 표현해 주는 행동이나 태도로 재해석하였다. 박지선 작가에게 'FAKE'란?
A. 책임. 사실 아무리 좋아하는 것을 해도 결과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그 과정에서 끌어주는 힘이 하나의 fake로 필요하거든요.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다 안 되는게 있잖아요. 저는 성과주의적인 사람이라 과정을 즐기지 못하는 편인데, 계속 작업을 해 나아가고 지탱하는 힘은 책임이 아닐까 싶어요. 인생 매 순간이 선택에 대한 책임감이 따르잖아요. 작게는 작업 과정 속에서도 계속 선택하고 책임져야 하거든요. 원래 싫은 것보다 좋아하는 것에 대한 책임의 무게가 더 무거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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