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PURI(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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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PPURI(뿌리)


디지털 밈(meme)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유행어나 드립, 신조어가 난무하는 요즘. 밈을 예술로 소화하는 이가 있다. 에어브러쉬(airbrush)를 페인팅 도구로 이용해 밈을 다채롭게 연출하기까지. 그만의 독특한 실험 정신이 바탕이 되어있었다.

서울에서 시각예술을 선보이는 작가 안태원에게 정해진 방향은 없다. 변화하는 환경을 받아들이고 꾸준함으로 천천히 걸어나간다. 평면부터 조형물, 설치 작업물까지 독보적인 행보를 보여주며 PPURI(@ppuri_)라는 활동명으로 디지털 밈을 형체화하여 본인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인터뷰를 통해 '안태원' 작가의 뿌리부터 알아가보자.

PPURI / ⓒfake magazine

Q. PPURI(뿌리)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이다. 네이밍의 특별한 뜻이 있는지

A. 특별한 뜻은 없어요. 입시 때 알게 된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지어준 별명입니다. 이후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면서 적당한 아이디가 떠오르지 않아 뿌리를 그대로 사용하게 되었어요. ppuri보다는 bburi가 뿌리라는 발음과 비슷해 b로 할까 했지만 시각적으로 별로여서 p로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종종 퓨리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요즘은 뿌리로 활동하기보다는 본명(안태원)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Q. n년간 다양한 아트웍(artwork)과 전시들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매번 재미난 작업물을 보여주는데, 초기와 현재의 스타일의 변화가 많아졌다.

A. 저는 변하는 주변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그리고 하나의 탐구 주제를 꾸준히 밀고 갈 만큼의 외골수적 성향을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그 때문에 시간이 지나며 변하는 성향, 관심사에 맞게 다루고 싶은 주제나 작업의 스타일이 바뀝니다, 새로운 재료를 접하면 거리낌 없이 써보는 편이기도 하고요.

PPURI / ⓒfake magazine

Q. 색다른 방식으로 에어브러시를 사용해 평면부터 설치 작업까지 여러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다양한 작업 방식 중 에어브러시를 선택하게 된 계기 또한 궁금하다.

A. 에어브러시는 대략 3년 전 SNS를 통해 작가를 서치하다 우연히 발견한 그림을 보면서 ‘무슨 재료일까?’, ‘뭐로 그리길래 이렇게 뭔가 컴퓨터로 그린 것 같은 효과가 나는 걸까?’ 궁금증이 들고 표현기법이 매력적으로 다가와 찾아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찾은 작가의 이름이 ‘오스틴 리'라는 작가에요.

제가 원래 재료나 스타일이 꽤나 빨리빨리 바뀌고 금방 쉽게 질려 하는 사람이었는데 에어브러시를 붙잡고 나서는 질리지 않더라고요. 꽤 오래 에어브러시 작업을 하다 보니까 남들이 봤을 때 저라는 사람의 스타일로 확립이 되고 있는 것 같아요. 저라는 사람으로 인식되려고 한 재료 선택은 아니었는데, 작업하다 보니 오래 작업할 수 있던 재료로 자리 잡은 것 같아요. 요즘은 또 그렇게 자주 작업하고 있진 않아요. 앞으로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는 것도 기대해 주셨으면 해요.


Q. 작은 전시물부터 대형 전시물까지 선보이는데, 작품에 대한 프로세스는 어떻게 되는가

A. 보통은 아이패드나 종이로 에스키스를 진행 후 실물로 옮기는 과정을 거쳐 작업을 뽑아내고 있어요. 대략적인 계획은 짜놓지만, 중간에 즉흥적으로 아이디어가 떠오른다면 방향을 트는데 주저하지는 않는 편입니다. 페인팅에 있어서 근 2년 정도 실생활이나 인터넷에서 수집한 이미지들을 잘라 붙여 넣으며 구성을 해나가며 현실에 디지털 밈을 끌어오는 작업을 해왔는데, 디지털 밈에서 느껴지는 소위 '킹 받는' 포인트를 작업에 담고자 했어요. 현재는 조금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Q. 아시아프(ASYAAF)부터 최근의 뉴욕 전시까지 많은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계속해서 다채로운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 또는 작품을 꼽는다면

A. 2022년 1월에 망원동 ‘얼터사이드’에서 했던 'PICREN'이 기억에 남는 전시 중 하나입니다. 그간 만들어본 것들 중 가장 큰 사이즈의 작업을 전시하기도 했고, 함께했던 한지훈 작가와의 쿵짝이 좋아 전시 준비과정도 재밌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Q. 다년간 예술 활동을 해오면 자연스레 소재나 아이디어에 대한 고민이 따라올 것 같은데, 어떠한 부분에서 영감 또는 아이디어를 얻게 되는지 궁금하다.

A. 고민이 많은 시기가 있고 그렇지 않은 시기가 있습니다. 주기적으로 바뀌어요. 아이디어가 막힐 때면 혹은 무언가 새로 뽑아내야 할 때면 내면에 집중하려는 편이에요. 하루에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나 감정이 많아요. 그래서 내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방금 무슨 생각을 했는지 떠오르는 대로 적어놓으려고 합니다. 그러면 어처구니없는 것에서 오글거리는 것까지 오만가지가 기록되더라고요. 꼭 적어놓은 것에서 아이디어를 뽑아내지 않아도 돼요. 그저 그렇게 생각을 비우면 뭔가 새로운 것이 보이고는 해요. 물론 안 보일 때도 있습니다. 보일 때까지 고통스러워해요.(웃음)

Q. 작품에 영향을 준 사람이나 작가들이 있다면

A. 다년간 영향을 준 사람들은 정말 많아요. 크게는 삶의 태도, 작게는 작업에 대한 아이디어와 미감까지 나열하기 어려울 만큼 주변 동료 작가들에게 좋은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해외 작가들의 작품에서도 물론 영향을 받기도 해요. 작품 자체의 퀄리티부터 감각들을 두루두루 보고 느끼며 내가 만든 결과물과 비교해 보는 편이에요. 창작을 한다는 것은 작가의 내면에서 비롯되는 것이지만 내면으로만 파고든다면 시야가 좁아질 수 있는 우려가 있다고 생각해요.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않기 위해서 지속적으로 국내외 미술 흐름을 파악하려고 노력합니다.


Q. 애완묘 ‘히로’도 일상을 함께하기에 자주 소재로 등장하는 건가

A. 반려묘 히로는 특별해요. 히로가 하루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자연스레 작업에 소재로 등장하는 것도 맞습니다.

PPURI / ⓒfake magazine

Q. 이전에 소속된 그룹, 갤러리가 있었다. 갤러리와 소속에 대한 장단점과 루트에 대해서도 궁금하다

A. 갤러리에 소속이 되는 과정은 정해진 길이 없는 듯합니다. 보통은 갤러리 측에서 함께 일하고 싶은 작가를 발굴하여 먼저 연락을 취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반대로 호기롭게 작가가 갤러리에 연락을 취할 수도 있죠. 몇 번의 전시와 페어를 함께 해나가며 신뢰를 쌓은 뒤에 계약을 진행하기도 하고요. 소속에 있어 장단점은 결국 작가의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갤러리와 일하게 된다면 작품의 포장, 배송 등등 작업 외적으로 할애해야 하는 에너지를 아낄 수 있지만 보다 자유로운 활동에 제약이 갈 수 있어요. 반면에 갤러리가 해줄 수 있는 일을 작가가 온전히 부담하면서 다양한 협업을 할 수 있는 자유도를 얻을 순 있죠. 어떤 쪽이 건 틀린 것은 없으니 본인의 성향과 상황에 걸맞은 선택을 통해 경험을 쌓아나가면 된다고 생각해요.

갤러리 외 크루와 같은 그룹은 지양하는 편이에요. 동료들과 작업실에서 같이 작업하며 서로 영향과 도움을 받는 정도에요. 같이 작업실을 사용하는 작가들은 대부분 학교에서부터 알고 있었던 사람들이고 성향과 작업 결이 잘 맞아서 자연스럽게 작업실을 같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뭐가 됐건 정해진 것은 없으니 본인이 원하는 것을 명확히 하고, 선택을 잘하고 길을 개척해나가시길  바랍니다.

Q. 안정적인 직업이 아닌 예술작품을 생산하는 직업 또는 생업으로 지내고 있는 지금, 어려움 점과 불편한 점 등 초기 활동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A. 출발 지점은 다를 수가 있어요. 어느 정도 부모님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도 있을 테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겁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초반에 최소한의 지원을 받아 시작할 수 있었어요. 생활비와 재료비, 월세를 모두 책임지고 작업을 해나가는 친구들도 주변에 있었기에 그들을 귀감 삼아 다른 친구들이 아르바이트하는데 쏟는 시간과 에너지만큼 작업에 투자했어요. 부모님의 지원을 허투루 낭비하고 싶지 않기도 했고요. 그렇다고 지원받지 못한 친구들이 뒤처진 것은 아닙니다. 결국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한다면 어떠한 형태라도 결과가 만들어질 거라고 생각해요.

PPURI / ⓒfake magazine

Q. 이번 23년의 한 해를 어떻게 나아가고 싶은지 그리고 작가로서 앞으로의 방향성이 궁금하다.

A. 23년은 작업과 더불어 건강을 챙기는 한 해가 되기 위해 노력할 생각입니다. 작업은 언제나처럼 열심히 하겠지만 작업 외적으로 작가 안태원이 아니라 사람 안태원으로 건강한 삶을 챙기는 것이 롱런하기 위해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느끼고 있는 중입니다.


Q. 'FAKE'의 의미를 목적을 달성한 모습을 더욱 매력적으로 표현해 주는 행동이나 태도로 재해석하였다. 뿌리에게 'FAKE'란?

A. 뿌리에게 ‘FAKE’ 란 열심히 했다고 만족하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