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에이리언> 디자인의 아버지, H.R. 기거의 그로테스크한 예술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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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8월 14일에 개봉한 영화 <에이리언: 로물루스>는 현재 누적 관객 수 100만 명을 돌파하며, 에이리언 팬덤과 새로운 관객층 모두를 사로잡아 반전 흥행에 성공하고 있다. <에이리언> 시리즈의 7번째 작품인 이 영화는, 전작들과 직접적인 연관성 없이 첫 번째 편과 두 번째 편 사이에 벌어진 사건을 그린 독립적인 스토리로 구성되어있다. <에이리언> 시리즈를 탄생시킨 리들리 스콧 감독이 이번에는 제작자로 참여해 큰 화제를 모았으며, 전작을 오마주한 장면들을 통해 시리즈 특유의 개성을 살려내며 호평을 받고 있다.

영화 <에이리언>을 떠올리면, 강력한 마니아층을 가진 독특한 외계 생명체의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생물과 기계가 결합된 듯한 이 그로테스크한 에이리언의 이미지를 최초로 창조한 이는 바로 ‘에이리언의 아버지’라 불리는 거장 예술가 H.R. 기거(Hans Ruedi Giger, 1940–2014).

H.R. Giger / ⓒBFI

H.R. 기거는 스위스 출신의 초현실주의 예술가로, 그의 독특한 스타일은 ‘바이오메카닉(biomechanical)’이라는 용어로 불린다. 생물학적 형태와 기계적 요소를 결합한 기묘하고 초현실적인 생명체를 다룬 이미지는 그의 작품 세계를 대표하며, 이는 SF 장르와 그로테스크한 디자인의 원조로 자리매김했다.

1940년 2월 5일, H.R. 기거는 스위스 그라우뷘덴주의 쿠어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약사였는데, 이로 인해 기거는 어린 시절부터 인간의 두개골과 뼈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기거는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í)와 장 콕토(Jean Cocteau) 같은 예술가들의 작품, 그리고 미국의 호러, 판타지, SF 소설가 H.P. 러브크래프트(H.P. Lovecraft)의 이미지에 깊이 빠져들며 어두우면서도 기묘한 취향을 형성하게 되었다.

H.R. Giger / ⓒBFI

다행히도 그의 부모님은 아들의 독특한 취향과 예술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었다. 기거는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자신의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회를 여는 등, 예술적으로 긍정적인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었다.

성인이 된 기거는 취리히의 응용미술학교에서 건축과 산업 디자인을 전공하며 다양한 예술가들로부터 영감을 받아, 점차 독자적인 스타일을 구축해갔다. 20대 중반에는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일하기 시작했으며, 이 시기에 그의 작품 세계의 근간이 되는 초기 작품들을 완성했습니다. 이후 영화 업계에 진출하며 초현실주의 화가를 넘어 일러스트레이터, 크리처 디자이너, 조각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예술적 역량을 발휘했다.

바이오메카닉(Biomechanic)

H.R. 기거의 예술 스타일을 대표하는 '바이오메카닉'은 생물학적 요소와 기계적 요소를 융합하여 음울하고 불안이 깃든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그로테스크하게 표현한다.

초기에는 주로 잉크를 사용해 작품을 그렸지만, 이후 그의 상징이 된 '에어브러시' 기법을 통해 작품을 완성하기 시작했다. 에어브러시를 활용해 특유의 원근감을 구현하며, 매끈하고 세밀한 그라데이션을 표현해냈다. 이러한 그라데이션은 마치 안개에 싸인 듯한 초현실적인 이미지를 연출하며, 기거의 작품에 불안감을 더욱 강화하는 효과를 부여했다.


네크로노미콘(Necronomicon)과 영화 <에이리언>

H.R. 기거의 바이오메카닉 스타일을 대표하는 작품집은 그가 큰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H.P. 러브크래프트가 자신의 소설을 위해 가상으로 만든 마도서의 제목에서 따왔다. 이 작품집은 기거를 외계 생명체 디자인의 거장으로 자리매김하게 했으며,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힙니다. 바로 이 작품집을 통해 영화 <에이리언>에 참여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기거가 처음 영화 업계에 발을 들인 것은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Alejandro Jodorowsky)의 ‘듄(Dune)’ 영화화 작업에서 디자인을 맡으면서부터이다. 비록 당시 <듄>은 제작이 취소되었지만, 함께 작업했던 댄 오배넌(Daniel O'Bannon)이 영화 <에이리언 1(Ailien)>을 제작하던 리들리 스콧(Ridley Scott)에게 기거의 작품 '네크로노미콘 IV'를 추천하면서, 기거는 <에이리언> 제작에 참여하게 되었다.

<에이리언>이 세계적인 흥행을 거두면서 기거의 창작물은 SF와 공포 장르의 아이콘이 되었으며, 198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시각 효과 부문상을 수상했다. 특히, 상징적인 외골격의 몸체, 길게 늘어난 두개골, 그리고 무시무시한 존재감을 갖춘 에이리언 디자인은 영화사에서 가장 인상적인 생명체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기거는 <에이리언> 1편뿐만 아니라 <에이리언 2>(1986), <에이리언 3>(1992)에도 참여했으며, 2011년에는 에이리언 세계관과 연관된 리들리 스콧의 또 다른 영화 <프로메테우스(Prometheus)> 제작에도 기여했다.

이외에도 기거는 영화 <폴터가이스트 II: 더 아더 사이드>(1986), <스피시즈>(1995) 등의 디자인 작업에 참여하며 할리우드에서 그의 명성을 더욱 확고히 했다.

Necronom by H.R. Giger / ⓒGaleria HMH

기거의 그로테스크한 초현실주의 작품의 영향력은 영화에 국한되지 않았다. 그의 작품은 수많은 예술가, 디자이너, 영화 제작자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그의 미학은 비디오 게임부터 앨범 커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대중문화의 측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1998년, 스위스 그뤼예르에 H.R. 기거 박물관이 개관하여 그의 작품들과 그의 영향을 반영한 다른 예술가들의 작품을 상설 전시하고 있다.

기거는 2014년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작품들은 상징적인 유산이 되어 예술 각 분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유기적인 것과 기계적인 것, 아름다운 것과 그로테스크한 것을 융합하는 그의 능력은 전 세계의 관객들을 매료시켰고 여전히 많은 영감을 주고 있다.




Editor / 노세민(@vactionwithpay)